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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황제의 역사 (6)

2018. 07.05. 19:33:28


1453년 동로마는 2206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멸망한다. 비잔틴을 중심으로 했던 동로마의 정교회는 의지처를 잃는다. 이 때 러시아가 등장한다. 몸은 아시아에 두면서 정신은 유럽을 지향하는 러시아는 1480년 몽골 타타르의 러시아 지배(1238-1480)를 종식시키고 모스크바 공국 시대(1480-1613)를 연 이반 3세때 국명을 '루시(Rus)'에서 '러시아'로 바꾸고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로 선포한다.

1453년 멸망한 동로마의 전통을 바로 러시아가 계승하고, 그리스 정교회의 중심이 러시아로 이동했다. 혈연적으로는 이반3세가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딸과 결혼을 했다는 근거에서다. 그리고 중앙집권화를 완성한 이반 4세때 러시아는 황제(짜르)를 자칭하고 나선다. 동로마의 정통성 계승을 주장하는 러시아 황제의 역사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로마노프 왕조(1613-1917)의 니콜라이 2세때까지 380여년간 지속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대표하는 인물은 프리드리히 1세다. 프리드리히 1세는 독일 설화에서 불사의 영웅으로 전해지는 인물로, 봉건체제로서의 제국 제도를 완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세기사의 전형으로 이탈리아 원정을 6차례나 단행한 인물이다.

프리드리히 1세에 이은 프리드리히 2세 이후 제국은 쇠락기를 맞이한다. 제후 간 세력 갈등으로 황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대공위 시대(1256-73)와, 대공위 시대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가 세습으로 황제의 지위를 잇기 시작한 1438년까지 제위가 여러 제후를 옮겨 다니던 기간이 바로 그것이다.

대공위 시대를 전후로 제국은 황제 선출 방식을 달리한다. 대공위 시대 이전에는 혈통자에 의한 상속과 제후들의 선거라는 두 원칙의 결합 방식으로 선출하던 것을, 대공위 시대 이후인 1273년부터는 3명의 대주교와 4명의 제후로 이루어진 7명의 선제후(選帝侯)가 황제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7명의 선제후에 의해 처음 선출된 황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1세였다.

1438년 합스부르크의 알브레히트 2세(재위 1438-39)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른 이후, 합스부르크가는 1806년 독일의 남서지역 제후들이 라인연방을 형성해 나폴레옹 지지 세력으로 떨어져 나갈 때까지 368년간 제위를 세습한다.

그리고 1508년 합스부르크가 중흥의 시조로 평가받는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즉위식부터는 로마에서의 교황 대관 관례를 없애버린다. 황제와 교황 간 협업관계의 종식이자 속권(俗權)이 성권(聖權)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카를 5세 사망 후 신성로마제국은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가, 에스파냐는 아들인 펠리프 2세가 물려받으나 에스파냐는 1700년 후손이 끊겨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프 5세에게로 왕위가 넘어간다. 이로부터 시작된 합스부르크가와 프랑스 부르봉가의 동·서 유럽 대립은 나폴레옹 시대까지 이어지고, 1806년 독일의 남서부 16개국 제후들이 라인동맹을 형성해 독일 제국을 탈퇴하고 새로운 유럽의 강자인 나폴레옹 편으로 돌아섬으로써 신성로마제국은 붕괴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관을 벗은 프란츠 2세는 1804년부터 자칭한 오스트리아 황제 지위만 유지하게 되고, 이름에 불과한 오스트리아 황제 자리는 1918년 1차 대전에서의 오스트리아 패전으로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480년(1438-1918) 합스부르크가의 영광이 카를 1세의 퇴위로 막을 내린 것이다.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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