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미술관 연홍도로 여행을 떠 났다. 육지와 섬까지 뱃길로 오 분 정도다. 연홍도 섬에서 나온 돌과 나무로 만든 작품을 보며 걸었다.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귀를 맑게 한다. 자연과 화음을 이루니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노래가 절로 나온다.

2019년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 갈등이 많았다. 정치권의 양 대립, 세대 간의 갈등이 두드러지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부딪쳤다. 아마도 멀티미디어 시대로 도립 되면서 삶의 질과 행복을 추구하는 각자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취업 포털사이트 인터크루(2019년)에서 성인 968명을 대상으로 가장 생각나는 사자성어가 무엇인가? 조사 결과 '전전반측, 노이무공, 각자도생 순이었다. 1위부터 3위를 차지한 사자성어를 풀이해 보면 전전반측(輾轉反側)은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노이무공(勞而無功)은 애만 쓰고 보람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사자성어를 직업군으로 분류했더니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직장인 중 구직자는 전전반측(輾轉反側), 자영업자는 노이무공(勞而無功)을 선택했다.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고민이다.

취업포털사이트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사자성어를 보면 모두가 힘든 해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취직자리가 없어 걱정이고, 자영업자는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경기가 어려워서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즉, 경제가 문제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는 2017년에는 세계경제 75%가 성장률 상승을 나타냈지만, 2019년에는 세계의 90%가 성장 둔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IMF도 2020년 대한민국 경제성장 전망을 2.1%로 밝혔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필요한 것은 휴머니티(humanity)이다.

2020년 SNS로 날아온 지인들의 안부 인사는 따스함이 묻어나는 문장이 대세였다. "우리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울 것입니다.", "작년 한 해 아쉽고 부족한 것 있더라도 지금 살아 있으니 대성공입니다.", "어차피 또 예쁠 건데 한 살 더 먹으면 좀 어때." 등 서로를 위로하는 인사말이었다. 그동안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 등 부자열풍으로 경제적 불안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사가 대세였다면 이제 '사람 사는 세상 더 따뜻하게'라는 화두로 안부를 전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배우의 대사는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오는 인물 대사 중 동백이의 독백은 "내가 알던 세상은 모든 게 어려웠는데 몰랐었던 모든 곳이 아름다웠다." 남자 주인공 용식이의 대사는 "동백이는 내가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동백이는 동백이가 지킨다." 시청자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마음 근육을 키워 주었다.

또한, 주인공 용식 엄마의 대사도 명대사였다. "영심아 너 우리 아들 뺑뺑이 돌렸냐. CCTV 바로 까라. 나 용식이가 군대서 선임에게 맞았다고 들었을 때, 통 닭 300마리 튀겨간 여자여." 용식 어머니의 반전 대사는 웃음을 빵 터트렸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스타는 노규태이다. 노규태는 변호사인 아내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어느 날 향미가 "오빠 멋져" 한마디에 쓰러진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 동백이, 용식이, 곽덕순, 정숙이, 홍자영, 규태, 향미, 종렬, 제시카, 필구, 까불이, 용산파출소 순경, 동네 아낙들..., 보통의 애매한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우리의 모습이다. 너무나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은 너, 나, 우리인 것이다. 누구 하나 버릴 것 없는 캐릭터를 보면서 사람 사는 따뜻한 세상을 보았다.

연홍도의 '지붕 없는 미술관' 바다 둘레 길, 마을 골목길을 누비며 걷는다. 벽화, 정크아트 작품이 재미있게 어우러져 여행자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준다.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과 놀다 보니 아르(아래) 끝 숲길과 바닷길을 따라 섬 한 바퀴를 금세 돌았다.

연홍도 담벼락에 붙여져 있는 '연홍사진박물관' 타일은 이곳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모아 만든 작품이다. 마을 사람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니 세상은 영웅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따스한 눈빛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2020년 경자년 새해에 '동백꽃 필 무렵' 향미의 대사를 인용해 본다. "너 가게 이름 잘 지었어. 동백꽃 꽃말 덕에 네 팔자는 필 거야." 당신의 따뜻한 언어로 팔자가 피는 한 해가 되자. 사람 사는 세상 '더'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