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 서서 흐르는 물살을 바라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리 지어 유장하게 흘러간다. 느릿하게 걷다가도 창창히 달려간다. 소쿠라지고 소용돌이치면서도 한 가지 열망으로 묵묵히 먼 길을 향한다. 더 낮고 넓은 곳으로 쉼 없이 향할 뿐이다.

늠실늠실 흘러가는 저 섬진강 겨울 강물을 보라. 강추위에도 온 힘을 다해 바다로 향하고 있질 않은가. 흐르다가 맴돌며 에돈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헤살 놓는 찬바람에도 잔물굽이만 흔들릴 뿐, 맴돌아도 눈을 뜨고 에돌아도 멈추지 않으며 힘 에 겨워도 해찰하지 않는다. 더디 가니 빨리 가라 등을 떠밀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갈 길을 잡아 흔적을 만들며 흐르는 중이다. 가야 할 길과 곳곳에서 흐르는 속도를 잘 알고 있다. 얼음장 밑일지라도 무릎 꺾여 넘어지더라도 도도히 흐르고 흘러간다.

우리가 산다는 것도 저 강물처럼 가야 할 곳을 향해 흔적을 만들며 흐르는 일이다. 힘겹다고 중도에 머물러 버리면 썩고 만다. 여울에서 맴돌다 길을 잃어버리면 방황하게 된다. 안주는 부패를 낳고 방황은 혼돈을 불러온다. 하나 방황할지언정 강물처럼 쉼 없이 흘러야 한다. 방황은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과 원동력을 잉태하고 있다. 수평선의 시원은 방황하면서도 쉼 없이 흐른 계곡물이다. 저 강물처럼 부지런히 흘러가야 한다. 중도에 마르지 않는 한 강물은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강물은 세류로 흘러 계곡을 지나 여울에서 감돌다가 대하와 만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청류가 되고 탁류도 된다. 절벽에서는 폭포로 떨어져 내려 소를 이루고 장애물을 만나면 사나운 기세로 빠르게 소용돌이치지만 평지에 이르면 장엄하게 흐른다. 산악에서 발원하여 바다에 이르는 강물의 흐름을 생각해 보라. 이 또한 우리 생의 모습이 아닌가. 강 상류의 빠르고 격한 흐름은 젊은 날의 열정과 방황을, 맴돌며 에돌아 흐르는 물길은 중년의 시련과 갈등을, 하류에 이르러 깊고 완만해진 흐름은 노년의 지혜와 넉넉함이지 않은가.

강물이 바다에 이르듯, 우리도 가야 할 길을 걷다 보면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 이르는 길은 안주나 방황이 아닌 순례의 길이다. 순례는 목표를 세우고 가야 할 방향을 향하여 먼 길을 걷는 여정이다. 고통이 따를지라도 가야 한다. 생의 등을 밀고 가며 숙성시키는 힘은 안락이나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질 않던가.

순례 중 간이역을 만나리라. 간이역은 중간 거점일 뿐, 삶의 본질에서 벗어난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것들이 매복해 있는 곳이다. 잠시 머물지언정 오랫동안 안주해서는 안 된다. 지향하는 방향과 과정에 힘쓸 일이지 간이역에서 길게 한눈팔다 보면 몸짓이 둔해지고 눈빛이 흐려진다. 이는 강물이 가르쳐 준 삶의 지혜이다.

기꺼운 순례를 위해서는 강물처럼 동무하고 함께 가는 이가 있으면 더 좋으리라. 동행은 방황이나 나태를 경계한다. 강물이 무리와 어깨를 걸고 흐르는 것은 빗나가지 않기 위해서다. 행렬에서 벗어나면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다. 무리에서 이탈하면 미아가 되기 쉽다. 누군가 곁에서 동행해 준다면 흔흔한 여정이 되리라.

묵상하며 강물 따라 천천히 걷는다. 무욕의 고요, 순명의 섭리, 생의 무량, 질곡의 너그러움으로 강물은 흐르고 흐른다. 하늘로 머리를 두르고 땅 위에 발을 딛고 물길을 따라 순례하자. 옷차림은 치장하거나 화려함을 뽐낼 필요가 없다.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지 못한다고 서러워할 필요도 없다. 누옥에 거처한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으며 이를 생의 고통이라 여기지 말 일이다. 인생은 기쁨 몇 숟가락에 나머지는 고통의 그릇이 아니던가.

저 강물 따라 하염없이 흐르고 싶다. 삶이 세월의 강가에 그물 치는 일이라면 이젠 더 낮은 곳에 생의 그물을 드리우리라. 낮게 살더라도 안락한 늪에는 빠지지 말 일이다. 생이 고통과 시련의 연속일지라도 축연이라 여기는 순례자가 되기를 소망하자. 어떻게 흘러야 넓은 바다에 이르러 수평선으로 설 수 있을는지, 강물에 그 길을 묻고 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