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통증이 날카롭게 솟구친다. 발바닥 맨살에 무언가가 파고든 모양이다. 발등이 얼얼하고 발바닥은 경련이 인다. 발바닥을 잦혀 바라보니 핏기와 함께 유리조각이 살 속에 깊이 박혀 있다. 이즈음 걸음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발을 소홀히 한 탓이다.

얼마 전부터 발이 시원찮아 걷기가 거북하였다. 발바닥이 당기고 화끈거리곤 했다. 이러다 괜찮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데 며칠이 지나도 불편함이 가시질 않아 병원엘 들렀다. 의사는 발뒤꿈치에서부터 발바닥 쪽으로 이어진 인대에 이상이 있다며 ‘족저근막염’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자고 일어나 첫걸음을 디딜 때, 오랫동안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일어설 때 통증이 나타나는 증세라는 거였다. 오래 걷거나 서서 일하는 직업, 발을 무리하게 쓰거나 발에 맞지 않는 신발 등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발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언제 이렇게 발바닥을 찬찬히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발바닥은 신체 중 가장 낮은 곳에서 온 체중을 싣고 다니며 노역에 가까운 일을 하는 곳이지 않은가. 발바닥이 없으면 어찌 땅을 디디고 상하 좌우로 이동할 수가 있으며 신체를 곧추세울 수가 있겠는가. 발바닥 가운데 움푹 꺼진 데는 그늘지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왜 이다지도 푸대접하고 무관심했을까. 같은 사지인 손은 가끔 다듬기도 하고 거칠어지면 무어라도 찍어 바르지 않았던가.

그날 오후, 가족은 염습실로 모여들었다. 흰 천 밑으로 내민 거무스름한 발과 창백한 발바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친 발등과 무지러진 발톱, 각질에 덥힌 뒤꿈치, 발바닥 볼에 속절없이 눌러앉은 티눈, 늘 철커덕거리는 고무신 속에서 헉헉대야만 했던 고리삭은 발가락.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왔던 모지락스러운 삶의 흔적들이 그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발과 발바닥은 식솔들을 위해 애면글면했던 한 생애가 각인된 신체 부위가 아닌가. 어머니, 필부匹婦의 삶이 이러할진대 거룩한 뜻을 일구며 산 이들의 발이야 오죽했으랴.

언젠가 큰스님이 산사에서 입적한 후, 제자들에 의해 법구가 다비장으로 운구 되어 가는 광경이 티브이에 방영되었다. 스님의 법구는 제자들이 추슬러 멘 어깨 위에 편안히 누워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스님의 발바닥은 천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스님은 발바닥으로 산천초목을 휘둘러보며 사부대중들과 이별하고, 사부대중들은 색색의 만장과 함께 법구의 발바닥을 바라보며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절 인연이 다하여 이승을 떠나게 되면, 비로소 다리는 머리와 나란히 같은 층위에서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보이지 않는 얼굴 대신 발바닥이 스님의 얼굴이 된 셈이다. 죽고 나면 얼굴보다 발과 발바닥으로 그의 삶이 기억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큰스님처럼 살다간 분들이 어찌 한두 사람이겠는가. 성자들의 행적 또한 발을 통해 이룩한 가르침이 아니던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직전,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슬쩍 발을 내밀었다고 한다. 평생 구도행으로 편평해진 평발이었다. 이는 영취산 법회에서 연꽃을 들어 보인 것처럼, 발을 통해 제자들에게 생의 무량한 비의를 뚱겨주고자 한 것이었을까. 공자도 고행 속에서도 제자들과 함께 드넓은 땅을 발로 걸어 다니며 덕치를 펼치려 하였고, 예수 또한 발바닥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곳곳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친 후 그 발에 못이 박히는 수난을 겪지 않았던가. 성자들이 일군 삶의 궤적은 모두 발과 발바닥의 의로움과 수고로움이 이룩해 낸 거룩한 행적들이다.

발은 보이지 않은 낮은 곳에서 생명을 일구는 식물의 뿌리와 같은 부위이다. 하나 발은 뿌리내릴 수가 없기에 늘 움직이며 걸을 수밖에 없다. 그게 발의 숙명이라면 생명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수레바퀴와 같은 일을 하는 게 발과 발바닥이지 않은가. 새삼스레 다시 바라보니 애달픈 마음이 든다. 핀셋으로 유리조각을 겨우 뽑아내고 약을 바른다. 그래, 이제부턴 발과 발바닥을 머리 얼굴과 같은 층위에 놓아두리라. 인간의 발은 신神의 날개로 만들었다는 누군가의 말이 비로소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