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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 에세이-질문과 대답<4>낙서화가 뱅크시의 반란
갈수록 상업화·제품화 되는 예술 양상에 경종
얼굴도 본명도 알려지지 않은 채 유명세
미술계 권위 부정·자본주의 지배에 반항
미술관보다 생동감 있는 예술, 거리서 펼쳐

2020. 02.13. 10:07:06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턴미술관 전시실에 몰래 걸었던 뱅크시의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 며칠 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채 전시되었고 결국 작가가 인터넷으로 밝혀서 알게 된다.

2005년 3월 뉴욕 메트로폴리턴미술관 전시실에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라는 초상화를 걸고 유유히 사라졌던 일이 있었다. 작품은 작가가 인터넷을 통해 밝힐 때까지 발각되지 않고 전시됐다. 이 사건은 대형 미술관의 허구성을 고발한다. 누구든 그곳에 걸면 당연히 명작으로 간주한다는 허상, 자본과 명성이 지배하는 미술계를 역겨운 눈으로 고발하는 작가가 있다.

뱅크시. 얼굴도 본명도 알려지지 않은 채 거리의 낙서 화가로서 유명해진 그는 미술계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본주의적 지배에 반항하는 행적을 보였다.

2018년 10월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서 약 15억 원에 팔린 뱅크시의 작품 ‘소녀와 풍선’이 경매 직후 저절로 파쇄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직후 뱅크시는 이 파쇄가 자신이 계획한 것임을 밝혔다. 절반 정도 파쇄된 이 작품의 낙찰자는 이 작품을 그대로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작품의 파쇄는 뱅크시가 미리 설치해둔 액자 속의 자동 장치에 의한 것이었다. 돈 많은 자들의 놀이터라는 경매 시스템 자체를 조롱하는 모습이다.

201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약 15억원에 낙찰된 직후 자동으로 파쇄된 작품 <소녀와 풍선>. 절반쯤 파쇄된 이 작품을 낙찰자는 그대로 받아들여 구입했다.
당연해 보이는 예술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조롱하는 이 사건은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갈수록 상업화, 제품화되는 양상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개인이 저항하기에는 거대한, 괴물 같은 시스템을 갖추어 개별적 존재 가치는 미미해진다. 거대한 상업적 광고가 지배적인 도시적 환경에서 낙서는 법에 저촉되는 반항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상품화되고, 무엇이든 정치화되는 환경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낙서화가로서 유명해진 뱅크시가 2013년에 뉴욕 센트럴파크 근처에서 수천만 원이 넘는 자신의 캔버스 작품들을 60달러에 판매하는 세일 이벤트를 벌였다. 그는 하루 종일 8점을 팔아 420달러를 벌었는데, 그렇게 팔린 그의 작품들은 최하 2만5,000달러를 호가하는 것들이었다. 거대한 시스템에 반항하는 반달리즘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열광하며 비싼 가격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 쓰레기들을 사는 바보 같은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4년 브리스톨의 한 클럽 문에 그려졌던 <휴대폰 연인>. 포옹하고 있는 순간에도 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운영난 때문에 문을 닫은 ‘브리스톨 브로드 플레인 소년 클럽’의 문짝에 그려졌다가 경매에 붙여져 6억 8,000만원에 팔렸다. 이 클럽은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2014년 브리스톨의 한 클럽의 문에 그린 ‘휴대폰 연인’은 남녀가 포옹하는 순간에도 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우리들 즉 현대인의 초상이기도 하고, 너와 나, 서로를 안고 있을 때조차 각자의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그려진 곳은 ‘브리스톨 브로드 플레인 소년 클럽’의 문으로 젊은이들의 사회적 진출을 돕는 곳으로 120년 전통을 자랑하지만 운영이 부진하여 12년째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림을 발견한 클럽 주인은 그림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할까봐 문짝을 떼어 건물 안에 들여 놨다.

이 그림에 관한 소식이 알려지자 시의회와 경찰, 브리스톨 시립미술관 등이 서로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러한 파장이 길어지자 뱅크시는 주인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아는 바로는 당신이 가져도 됩니다.’ 주인은 문짝을 경매에 내놓았고 약 6억 8,000만 원에 팔려 클럽은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이렇게 유명하고 작품이 고가로 거래되고 있지만 그가 누군지 어떤 모습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거리의 낙서가’로서의 익명성을 즐기는 듯하다. 대영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턴미술관에 남몰래 작품을 걸고 전시가 진행되도록 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이를 알리는가 하면, 소더비 경매에서 팔린 작품이 그 자리에서 파쇄하는 등 일을 벌이고 그것이 자신의 행위임을 공개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정체는 감추는 뱅크시 특유의 놀이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는 이렇게 자신을 변명하고 있다. ‘재수없어 꼬리가 밟히면 결국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토니 블레어나 케이트 모스 같은 인간들 옆에 서서 시답지 않은 전시회 개최 테이프를 끊어야 하는,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상태를 당할 수 있어서다. 그런 일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거리의 벽에 낙서와 그림을 그리는 불법적인 짓을 해서 얻는 흥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후다닥 작업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담배 한 대 피우면서 그들이 절대 나를 잡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즐기는 건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이다. 섹스나 마약보다 훨씬 흥분되는 일이다.’

서울 명동성당 앞 거리에서 찍은 낙서. 작가도 모르고 그 의미도 모르지만 이제 거리의 낙서는 도시의 중요한 기표가 되어 있다. 언더그라운드의 이런 언어가 없다면 도시는 자본의 지배를 받으며 더욱 삭막해질 것이다. 대도시일 수록 낙서가 기승을 부리는데, 거대한 도시 구조에 대하여 내가 살아 있다는 외침을 느낄 수 있다.
거리에 미술관보다 생동감 있는 예술이 전개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리고 거리의 낙서 예술가들은 교육이나 제도적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발상을 거리의 현장에서 펼친다는, 불법적이지만 그러기에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긴장을 느끼면서 빠른 시간 내에, 남들이 잠든 새벽 시간에 도둑처럼 그리고 사라져야 한다는 생리가 잘 드러난 언급이다. 정말 토니 블레어 같은 권력자와 나란히 서서 테이프를 끊는 일은 지루한 일일까? 그럴 것이다.

뱅크시는 도시 곳곳에 소외된 사람들의 의인화된 상징으로 쥐를 그렸다. 권력자들은 이들에 의해 공격당하거나 조롱당한다. 그는 야생 쥐처럼 도시 공간을 가로질러 다니면서하고 싶은 것들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말하기를 ‘그들은 허가 없이 존재한다. …그들은 더럽고 불결하고 절망 속에서 산다. …당신이 지저분하거나 존중받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의 결정적인 역할 모델은 바로 쥐다’고 하였다.

쥐는 바로 우리, 권력이나 자본의 힘에 눌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 못하는 무력한 개인이 그들이 만든 시스템에 항의할 수 있는, 아직은 생명이 부여한 야생성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초상이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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