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에서 최근에 인사발령이 났다. 이전 팀은 정책연구교류팀 , 새롭게 일하게 된 팀은 문화예술교육팀이다. 나에게 딱 맞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또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지만 사실 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어떨 땐 기획하는 일이 맞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땐 현장을 뛰어다니는 일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 같기도 하다. 때로는 인사이동을 통해 미처 나 자신이 생각지 못한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면서 숨겨진 나의 관심사와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문득 돌이켜 생각해보니 재단 입사 직전 나의 직함 호칭은 PD였다. 프로젝트 디자이너(Project Designer)의 영어 앞글자이다. 일의 시작 전 단계부터 마무리 단계까지의 전체를 디자인하는 사람, 지금의 직장, 일적인 관계에서 나는 팀장님이다. 직장 밖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남용되는 선생님으로 주로 불린다. 가끔씩 아줌마라고 표현될 때는 아직도 참 낯설다. 나도 누군가를 아저씨, 아줌마로 부르는 건 그리 썩 내키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로 호칭은 대화 상대를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대화 상대에 대한 대우 정도를 표현하는 언어로서 넓은 의미로 상대를 가리키는 지칭어를 포함하기도 한다. 이러한 호칭어 사용은 동일한 상대일지라도 대화 상황이나 친밀감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사적인 영역에서 나는 유진님, 유진씨로 유진아로도 불린다. 사실 호칭은 관계를 규정한다. 대화를 하는 두 사람 사이의 무의식을 지배하여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된다.

새로 일하게 된 문화예술교육팀과 첫 업무회의를 했다. 내 수첩에는 몇 가지 공유할 사항이 적혀 있었다. 해야 할 일에 대한 업무 공유를 마치고 호칭 정리를 해보자라고 말했다. 문화예술교육팀엔 팀장, 대리, 주임 등의 직명이 있는 정규직 외에 비정규직 직원 수가 좀 많은 편이었던 것이 계기다. 맡아서 하는 일의 특징을 담아 비정규직의 호칭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의견을 모았다. 그러면서 나도 직장 내에서의 호칭에 대한 내용들을 찾아보았다. 월마트는 직원을 회사의 이익을 공유하고 함께 사업을 이끌어가는 동반자 즉 동료라고 부르며 끈끈한 공동체를 강조한다고 한다. 스타벅스에서는 직원을 파트너로 디즈니랜드 등에서 손님을 위해 최고의 쇼를 보여주는 배우로 부른다고 한다. 이제는 많은 상황들이 달라졌다. 한 사람이 일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완성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관계적 측면에서 파트너가 좋을까?

호칭이란 상대를 대하는 태도이다. 호칭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호칭은 어느 시기의 문화를 반영하며 변화해 간다

흔히 직장생활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 물어보는 바로 위 선임을 일컫는 '사수'라는 호칭 대신 '짝궁'이라 부르면 어떨까 하는 얘기도 나왔다. 수평적인 관계, 따듯하면서도 존중받는 느낌. 단어에서 오는 어감도 좋기 때문이다.

좀 더 말랑한 호칭에 대해 떠올려보고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쩐지 새로운 팀에서의 일들이 정말 재밌고 즐거워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팀에서 또다시 나의 삶의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나는 누구였지? 이렇듯 나 자신이 어떻게 불리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상대도 그 호칭을 좋아하는 것이었을까?

최근 국립국어원은 언어 예절 안내서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를 만들었다. 이 안내서는 틀렸다, 쓰면 안 된다라고 여기던 기존의 호칭과 지칭을 포용해 허용범위를 넓히는 것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호칭과 지칭의 비대칭성, 차별적 요소를 없애야 한다는 것에서 나아가 '누구를 이렇게 부르면 안 된다'는 식의 강압적인 규범의식은 현시대에 역시 맞지 않고 이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간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서로 상대에게 '뭐라고 부를지'를 묻고 원하는대로 불러보면 어떨지를 제안했다. 친구라면 눈빛이 아름다운님, 영혼이 맑은님, 직장 동료, 같은 팀원이라면 짝궁님...

이런 작은 시도가 놀랍게도 일에 생기를 불어넣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