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에 강이 있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강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 강에서 여름이면 멱을 감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속을 첨벙댔다. 처음에는 강가 얕은 곳에서 물장구나 치며 놀다가 차츰 수영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바닥에 발을 대지 않고도 몸이 떠올랐고 물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볼 수도 있었다. 나는 등 밑을 간질이는 물 위에 누워 끝도 없는 하늘을 보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또래 친구들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물에 등을 대고 누울 때면 세상천지에 혼자라도 좋았다. 망망한 물 위에 두둥실 떠 있으면 강물도 반기는 듯 온몸을 찰싹댔다.

그럴 때면 왁자한 친구들의 소리는 아득히 멀고, 눈부셔 바라보기도 어려운 하늘의 태양이나, 저 건너 높이 솟은 검푸른 산마루나, 그 아래 층층이 내려앉은 자잘한 논밭들이 잡힐 듯이 가까웠다. 딱 한 번 가본 적 있는 판동이네 오두막도, 그 쿰쿰했던 방안 어두운 아랫목도 코앞인 듯 다가왔다. 꼬부라져 돌아가는 긴 황톳길도, 구름이 피워내는 기묘한 형상들도 다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처럼 넘실대는 강물 위를 유유히 떠있었다. 출렁이는 물이랑도, 스쳐가는 바람도 아늑하고 평온했다.

이윽고 나는 아직도 강가 얕은 곳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과 멀어져 외따로 나앉은 바위 쪽을 향해 갔다. 물결은 헤살헤살 내 등을 떠밀고 바위는 저만치서 어서 오라 손짓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서툰 헤엄을 쳤다. 그러다가, 문득 시퍼렇게 날을 세운 물의 낯을 보았다. 물은 순식간에 나를 후렸다. 지레 겁먹은 나는 급기야 온몸이 곤두박이고 말았다. 깊은 물 속, 아무리 발을 뻗어봐도 닿는 데라곤 없었다. 대체 어디가 바닥인가. 바닥만 찾으면 공처럼 다시 튀어 오를 수도 있으련만…. 나는 헛발질만 계속했다. 나는 아메바처럼 흐물거렸다. 나는 물귀신처럼 보였다 안 보였다 맥을 놓고 말았다.

물에 빠져 정신 잃은 나를 언니가 구했다. 언니는 다이빙 선수처럼 곧장 물속으로 뛰어들어 허우적대는 나를 강가로 끌어냈다. 나는 강가 모랫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찔했던 기억과 알 수 없는 공포 사이에서 아직도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안의 동물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포획되어 있었고 잡혀 온 짐승처럼 떨고 있었다. 여전히 바닥을 알 수 없던 발밑의 공포만이 그악스레 나를 휘감고 있었다.

아주 가끔 강이 바닥을 보일 때가 있었다. 강 아래쪽에 작은 수력발전소가 있었고 그곳에선 이따금 수문을 열었다. 방방하던 물이 빠져나가고 강이 바닥을 드러낼 때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강으로 갔다. 질퍽한 강의 밑바닥엔 주먹만 한 조개들이 널려 있었다. 홍합보다 더 크고 더 까맣고 더 둥그런 그것을 우리는 마개라고 불렀다. 그 큰 마개가 손에 잡힐 때면 금덩이라도 거머쥔 듯 오지고 흐뭇했다. 몇 개만 잡아도 한 양푼이 금방 찼다. 옷이며 얼굴이며 팔다리까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됐지만 그런 것쯤은 아랑곳도 없었다.

다시 강물이 불고 바닥이 제 몸을 숨길 때까지의 그 짧은 몇 날은, 내 생애 몇 안 되는 환희의 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여름 나는 끝내 바닥을 헤매고 돌아왔지만, 온몸에 바닥의 공포만 칠갑하고 돌아왔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 또한 은총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내 옆에는 다행히도 언니가 있었고, 언니뿐 아니라 친구들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틀림없이 달려와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살 수 있었고 이듬해도 여전히 멱을 감고 놀 수 있었다.

강이 흐르고 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강은 한결같이 흐르고 있다. 나는 저 강의 바닥을 보았었다. 그 안에 옹골지게 품고 있던 보물들도 보았었다. 저 강의 공포와 저 강의 환희와 그리고 저 강의 유유함…. 나는 저 강의 비밀을 알고 있다. 저 강도 틀림없이 나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의 소슬한 슬픔을 저 강은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