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의 확산세가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 첫 발병지인 중국을 너머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바이러스에 비해 사망률이 비교적 낮은 수치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는 고령자들도 잇따라 숨져 공포감을 더해주고 있다. 현재와 같은 확산세라면 조만간 판데믹이 내려질 전망이다. 판데믹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1~6단계까지 나누는 경보단계 중 최고등급을 일컫는다. 그리스어로 '판(pan)'은 모두, '데믹(demic)'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전파돼 모든 사람이 감염된다는 의미다.

판데믹은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몰살시킨 페스트(흑사병)를 비롯해 1918년 유럽 대륙에서 5,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1968년 100만명이 희생된 홍콩 독감 등이 유행할 때 내려졌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일상생활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마스크 착용이 남을 배려하는 생활예절이 됐고 악수 등 신체접촉 인사가 사라졌다. 유럽에서도 전통적으로 통용돼 온 키스·포옹 등의 애정 섞인 인사법이 바뀌고 있으며 최근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교회들이 성찬의식을 취소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 보건당국은 사람들 간 인사할 때 신체 접촉을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와 관련, 1439년 영국의 헨리6세가 '페스트와의 전쟁'에서 키스를 금지한 것의 재현에 비유했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페스트는 인류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힌다. 유럽 인구의 1/3을 사망케 한 페스트는 몽골제국이 중앙아시아 교역로(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으로 빠르게 확산시켰다. 페스트의 공포는 전쟁에서도 위력을 나타냈다. 몽골제국의 군대가 흑해 연안의 도시 카파(Caffa)를 공격하던 중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자 페스트에 감염돼 사망한 몽골군의 시체를 투석기를 사용해 성안으로 던져 넣어 승리를 얻었다고 한다. 최초의 생물학전인 셈이다. 당시 몽골제국에 성을 빼앗긴 귀족들은 배를 타고 제노아 항구로 피신했으나 입항을 거부당하자 마르세유로 돌려 입항했다.

하지만 며칠 사이에 페스트가 급속히 퍼져 결국 마르세유 주민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페스트균은 프랑스 노르망디를 거쳐 독일로 퍼져 유럽 전체로 확산됐다. 페스트가 유럽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는 의료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탓에 마땅한 치료약이 없었다. 사망률이 거의 100%에 달할 만큼 치명적인 데다 전파력도 어마어마하게 강해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 유럽인들은 이런 공포감을 떨쳐 내기 위해 교회에 의지했다. 하지만 이런 종교집회는 집단감염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졌다.

의약품이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교황청은 신자들에게 회개의 눈물로 섞은 고약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일부 신자들은 성인의 성상 앞에 매달려 기도하거나 성지를 순례하는 등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퍼포먼스에 몰입했다. 또 일부는 전염병을 하나님의 진노라거나 마귀의 농간으로 규정하면서 광신도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지금 인류의 지식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진단과 처방이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따랐다.

그 후 수백년이 지나고 인류의 문명이 14세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지만 전염병에 대처하는 인류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 19'를 확산시킨 '신천지'의 교주는 '코로나 19'를 마귀의 짓이라고 했다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여기에다 아직 수천명의 신천지 회원들이 정부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뉴스는 국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개신교들 역시 정부와 지자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예배를 강행하고 있다.

유럽에서 페스트가 극성을 부릴 당시에는 불안감 때문에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교회들의 예배 강행은 무슨 의미인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14세기에는 전염병에 대한 개념 자체를 몰랐지만 태양계 밖까지 탐사선을 내보낼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한 현 인류는 전염병의 발병과 치료에 대한 전반적인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 문제는 전염병에 대처하는 인류의 태도가 14세기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무지함은 쉽게 극복할 있는 전염병을 아주 위험스러운 존재로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