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성적 쾌감을 느끼는 것을 사디즘(sadism)이라고 정의한다. 가학증 또는 학대음란증이라고도 불리는 사디즘은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게 되는 마조히즘(masochism)과 상반하는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은 변태적인 성욕쯤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사실 인간의 본능적인 면이기도 하다.

심층심리학자인 S.프로이트는 모든 생리적 기능에는 사디즘이 숨어 있으며 마조히즘은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사디즘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성 목표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공격적이며 고통을 주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경향을 가리킬 때도 있다는 것이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인간관계에서도 확인되기도 한다. 이는 주로 지배와 복종 관계에서 나타난다.

사디즘이라는 용어는 18세기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명성을 누리던 귀족 가문의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사드는 부친의 사망으로 재산과 작위를 물려받은 뒤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쾌락만을 추구했다. 특히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성적인 실험까지 자행했는데 부활절 사건으로 알려진 가학적인 성착취는 프랑스를 충격에 빠뜨렸다.

매춘부를 채찍으로 때리고 몸에 상처를 입히는 폭행을 자행한 것이다.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풍파를 겪은 사드는 연극과 소설 몇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 역시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로 넘쳐났다.

미성년자를 비롯한 여성들의 성착취와 성폭행 영상을 상품화한 'n번방'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일명 '노예'로 불리는 여성들의 성 착취 사진을 올리고 신상정보까지 공유했다고 한다. 이들 불법 채팅방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박사방은' 성 착취물을 텔레그램 채팅방에 유통하고 암호화폐 결제로만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는 전문적인 모델을 만들었다고 한다. 운영자 조주빈은 수십만원에서 150만원까지 금액에 따라 여러 등급의 채팅방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채팅방 영상을 보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조씨가 운영한 '박사방'을 비롯해 여성들의 성착취 및 성폭행 영상을 상품화하는 'n번방'회원 숫자가 무려 26만명에 달한다는 경찰 발표는 충격적이다. 어찌 이리 많은 사람들이 어리고 여린 여성들이 고통받는 광경을 돈까지 줘 가면서 구경한다는 것인지 사회의 야만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우울하기만 하다.

국민들의 분노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최근까지 200만명이 이들 불법 채팅방에 돈을 주고 입장한 유료회원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유료회원들이 'n번방'의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범죄단체 적용 여부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유료회원들을 공개하는 방안이 검토되자 지난 27일 새벽 서울 영동대교에서 40대 남성이 박사방 회원이라고 밝힌 유서를 남기고 한강에 투신했다. 이에 앞서 지난 24일에는 여수에서 'n번방' 영상물을 소지하고 있던 20대 남성이 음독 후 경찰에 자수하는 일도 있었다. 'n번방'사건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중요한 것은 제2, 제3의 'n번방'이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 구조가 이런 집단적 사디즘이 상업화되는 것을 방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법체계부터 살펴봐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위탁 수행한 '2018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 분석'에 따르면 법원의 최종심 선고 유형과 형량은 전체 신상정보 등록대상자의 48.9%('17년 50.8%)가 집행유예를 받았고, 35.8%('17년 33.7%)가 징역형, 14.4%('17년 14.4%)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절반 정도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폭행과 성착취를 근절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n번방' 회원들에 대한 명단 공개와 강력한 처벌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들은 단순한 가담자로만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회비를 납부한 것은 범죄에 필요한 자금을 대준 것이나 다름없다. 조씨가 회원을 모집하며 '맞춤형 성 착취'가 가능하다고 홍보한 점과 참가자들이 실제로 조씨에게 구체적인 성 착취물 제작 방향을 요청한 점을 볼 때 공범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이런 범죄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