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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마르트르' 언덕서 영랑과 다산을 만나다
생가 돌담 돌아 모란공원 오르는 얕은 언덕
영랑의 흔적 오롯이 담은 '화중지왕' 모란꽃
춤꾼 최승희와 이루지 못한 사연 품은 동백
신교육 발상지 '금서당' 독립정신 싹 키운 곳
주말&-박재완의 발걸음 경계에서

2020. 05.14. 18:10:56

5월 영랑 생가와 모란공원 일대에는 '화중지왕'이라 불리는 모란꽃이 활짝 피었다.

■강진 김영랑 생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강진만과 제주가 한 눈에

몽마르트르 언덕이 파리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몽(Mont)은 산, 언덕을 이야기한다. 마르트르(Martre)는 순교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강진 김영랑 생가와 모란공원.

이곳을 찾은 필자는 불현듯 꿈 몽(夢)자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영랑 생가 돌담을 끼고 돌아 모란공원으로 오르는 야트막한 언덕은 다산 정약용의 첫 유배지인 사의재 뒷산이자, 영랑 김윤식, 그리고 최근까지 활동한 완향 김영렬 화백의 흔적들이 오롯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강진의 진산 보은산 자락 양지바른 언덕을 '夢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다뉴브강 대신 강진만과 완도까지 들어오는 절경이 있고, 보은산 정상 우두봉에서는 멀리 제주까지 한 눈에 다가온다.

5월 영랑 생가와 夢마르트르 언덕 일원에는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고 불리는 모란꽃이 만발했다.

남(南)영랑, 북(北)소월이라 불리며 천재적 감성과 감각을 지녔던 시인. 영랑은 맑고 깨끗한 서정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우리에게 익숙한 정감 어린 남도 토속어로 최고의 순수 미를 추구했다. 그의 몸속엔 남도 예인의 DNA가 배어있었나 보다.

영랑의 생가 사랑채 툇마루에 걸쳐 앉으면, 뭔가의 환청에 빠져든다. 그의 시 '거문고'와 '북' 때문이다. 그의 사랑채에는 가객의 발길이 잦았고, 특히 이화중선(李花中仙)과 임방울(林芳蔚)의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또 거문고를 즐겨 연주했다고 한다.

그의 시 '북'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떠받는 명고(名鼓)인듸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動中靜(정중동)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人生(인생)의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제



구성진 소리 가락에 명고의 장단이 귀를 울린다. 지금도 영랑의 사랑채에선 임방울의 쑥대머리가 귓가를 스치며, 이화중선의 심청가가 들리는 듯하다.







◇최승희를 그리던 동백나무

영랑 생가의 전시용 장독과 샘터를 지나 夢마르트르 언덕으로 가는 돌계단으로 오르다 보면 빼곡하게 자란 대나무숲과 몸뚱이를 이리저리 뒤틀어 꼰 동백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그중 가운데에서 가지를 비스듬하게 장독대 쪽으로 엎드리고 있는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동백나무가 영랑이 우리나라 최고 춤꾼이었던 최승희와의 사랑을 부모님 반대로 이루지 못해 목을 매달고 죽으려 했다는 나무다.

최승희는 영랑의 벗인 최승일의 누이동생으로 양가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런 사연을 품고 동백은 지금도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 그리 넓은 광장은 아니어도 모란꽃 온실에는 울긋불긋 찬란한 꽃들이 맵씨와 향긋한 내음으로 유혹한다. 그리고 온실 밖에는 나라별로 개화 시기를 달리하는 모란들이 늦여름까지 서로 경쟁하듯이 꽃봉오리를 터트린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모란공원에서 살짝 발걸음을 돌리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50여년이 된 모란과 150년, 70년, 50년 등 국민들이 기증한 모란들도 만난다.

다산의 첫 유배지였던 동문주막 사의재 장다리 꽃밭에서 막걸리병을 든 주모와 딸의 모습이 정겹다.






◇미술관이 지키는 '금서당'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올망졸망한 섶 길을 걷다 보면 영랑이 다녔던 금서당(琴書堂)이 나온다. 1905년 사립금릉학교로 출발한 금서당은 1907년 대한제국의 인가를 받아 정식 개교한 신교육의 발상지다. 개화기 무렵 체계적인 교육 및 독립정신의 싹을 키운 장소로 영랑은 1911년 관립보통학교(금서당)에 입학해 1915년 졸업했다. 지금은 완향 김영렬 화백의 미술관으로 숱한 그림과 작업했던 화구들이 그대로 전시돼 있으며, 김 화백의 부인이 완향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금서당까지 길은 눈이 시리도록 고운 풍광이 비쳐진 곳이다. 여기를 나서 자연스럽게 쌓은 돌계단을 돌아 걷다 보면 시골집 앞마당에 울타리 삼아 심어놓은 탱자나무가 있다. 낡아 곧장 무너질 것 같은 대문과 울긋불긋 곱게 꽃핀 마당에 하얀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풍경은 외갓집을 연상케 하듯 많이 그리고 봐 왔던 머릿속 풍광이다.

다산의 첫 유배지였던 동문주막 사의재 장다리 꽃밭에서 막걸리병을 든 주모와 딸의 모습이 정겹다.






◇다산이 머문 동문주막 사의재

다산 정약용은 1801년부터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와 읍내에 도착했고, 다산의 딱한 사정을 알고 한 주모가 골방 하나를 내어줬다고 한다.

다산은 '네 가지(생각, 용모, 언어, 행동)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란 뜻으로 사의재(四宜齋)라는 당호를 걸었다.

다산은 첫 유배지 동문주막 사의재 뒷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우이도(牛耳島)에 유배 중인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는 시를 남긴다.



나해와 탐진이 이백 리 거리인데

험준한 두 우이산을 하늘이 만들었던가

삼년을 묵으면서 풍토를 익히고도

자산이 여기 또 있는 것은 내 몰랐네

사람 눈은 그 힘이 멀리 보지 못하여

백 보 밖의 얼굴도 분간을 못 하는데

더구나 탁주 같은 안개구름 껴있으며

눈앞의 섬들도 자세히 보기 어려움에랴

먼먼곳을 실컷 본들 무슨 소용 있을 건가

괴로운 마음 쓰라린 속을 남들은 모른다네

꿈속에나 서로 보고 안개 속을 바라보다

눈물 커지고 눈물 말라 천지가 깜깜하다네



동문주막 사의재 마루에서 막걸리 한잔하는데, 내 앞에는 막걸리병을 든 주모와 딸이 장다리꽃밭에서 나를 보며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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