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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곳 없이 착한 딸 허망하게 떠났어요"
<5·18 기획> 40년 만에 받은 명예 졸업장
<3>고 김명숙 모친 양덕순씨
책 빌리러 가다 군인이 쏜 실탄 맞아
유족 "터무니없는 왜곡에 죄인 취급"

2020. 05.20. 19:12:31

양덕순씨가 80년 5월 계엄군의 오인사격으로 세상을 떠난 딸 김명숙씨를 생각하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어찌나 착하고, 모난 곳 없는 제 딸이었습니다. 집안일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랬던 사랑하는 딸이 허망하게 총을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덕순씨(82·여·사진)에겐 모난 구석 없는 착한 딸, 고 김명숙씨(당시 15세). 명숙씨는 언제나 궂은 집안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부모님이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설거지는 물론 “엄마, 내가 밥할게”라고 말할 만큼 명숙씨는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양씨는 그런 생때같은 딸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양덕순씨는 40년 전, 그날만 생각만 하면 가슴이‘벌렁’거린다. 80년 5월 16일 밤 7시 30분쯤. 당시 서광중학교 2학년이었던 명숙씨는 자연과학 책을 빌리러 친구 집에 간다고 했다. 얼마 후 갑자기 총소리가 울렸다. 놀라서 나가보니, 용봉천 건너편에 숨어있던 군인 5명이 천변을 향해 공포탄 한 발을 쏘았다.

현장을 목격한 양씨는 “천변 근처 난간에 있던 딸이 공포탄에 놀라, 강쪽으로 넘어지는 걸 봤다”며 “그때 군인들은 대학생인 줄 알고, 허벅지에 실탄을 쏴버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이 명숙씨를 업고, 방에 눕혔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명숙씨 오른쪽 다리는 피로 물들었고, “엄마, 나 죽겄어, 살려줘”라고 외쳤지만 딸은 과다출혈로 의식을 점점 잃어갔다. 남편이 군인들 차량에 태워 즉시 상무대로 향했다. 하지만 명숙씨는 병원 이송 중 피를 너무 흘려 결국 숨졌다.

양씨는 “남편이 딸을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말했지만, 숨졌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까봐 남편이 거짓말을 했다”며 “보름 뒤에 딸을 화장했고, 억울하고 원통해서 날마다 울기만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딸을 보낸 뒤 남편은 화병으로 8년 전 세상을 떠났고, 명숙씨 또한 딸이 허망하게 사망하면서 가슴에 멍울이 생겼다. 목 인근까지 전이되자, 청주 등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최근에는 수술도 하면서 몸이 급격히 쇠약해졌다.

딸의 억울한 슬픔은 세월이 지나도 가시지 않지만, 국가유공자라는 이유로 ‘수혜’를 받는다는 왜곡된 시선도 거두어지길 바란다고 양씨는 강조했다.

양씨는 “딸을 잃은 슬픔도 크지만 매달 큰돈을 받는다는 왜곡된 주장도 너무 억울하다”며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사실에 유족들은 또 한 번 죄인이 된다. 그날의 진실을 전 국민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최문석 기자·사진 김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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