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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지금 외출중
중견작가 박혜강 첫 소설집 ‘바깥은 우중’ 펴내
각종 지면 발표작 중 단편 6편·중편 1편 추려

2020. 06.02. 10:46:31

‘바깥은 우중’ 표지

박혜강
“작가는 글로 말하는 것입니다. 장차 글로 계속 말하겠습니다.”

1991년 장편 ‘검은 노을’로 제1회 실천문학상을 받은 박혜강 소설가의 수상소감이다.

그는 ‘젊은 혁명가의 초상’, ‘다시 불러보는 그대 이름’, ‘안개산 바람들’, ‘운주 1~5권’, ‘도선비기 1, 2’, ‘조선의 선비들 1, 2’, ‘매천 황현 1, 2’, ‘꽃잎처럼 1~5권’ 등의 장편소설을 펴내면서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았다.

등단 이후 줄곧 장편소설만을 출간해 온 그가 첫 소설집 ‘바깥은 우중’(문학들 간)을 펴냈다. 그동안 틈틈이 각종 지면에 발표했던 작품들 중 단편 6편과 중편 1편을 추려 엮은 것이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이자 시대와 불화하던 사내는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날개를 위하여’)라는 문장을 남기고 한 달째 행방이 묘연하다.

혁명에 실패한 한 청년은 도시에서 거대한 폭력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미완의 탑’)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칩거했다. 간혹 몇 번의 비밀스런 외출을 거듭하다 급기야 사라졌다. 청년의 방에는 ‘돌무더기’들만이 가득했다.

파스텔 톤의 청색 실크스카프(‘파랑새’)를 맨 한 여인은 낯선 사내의 트럭을 타고 동해로 가는 중이다. 시아버지의 제사가 오늘이어서 장바구니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지만, 파랑새처럼 하늘을 날고싶었던 그녀는 현재 부재 중이다.

백지 앞에서 절망하던 한 작가는 비릿한 갯내음이 스며드는 어느 낯선 방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하루에도 팔만사천 번씩 절망하고 또 팔만사천 번씩 희망을 세우다(‘명사십리에는 순비기가 있다’) 숙취에 빠져 있다.

박혜강의 소설 속 인물들은 예외없이 모두 실종 상태다.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이들은 모두 사건 이후 폐허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는 작가의 문학적 도정을 담고 있는 인물들이다. 다른 표현으로 사건 이후 문학이 제출할 수 있는 진리의 공정을 수행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의 정동으로 오월을 서사화하고, 어디에선가는 역사의 한 장으로 오월을 기념비화하면서 과거의 사건으로 서둘러 정리하고, 누군가는 퇴화되어 버린 날개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현실의 늪으로 깊숙이 발을 옮길 때, 작가 박혜강의 분신들은 실종과 우울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빈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설집의 제목은 박제된 천재 시인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발췌한 ‘바깥은雨中’에서 따왔다. 어쩌면 더욱 거세지는 ‘빗속 저편에 밝고 해맑은 풍경이 기다리며’(‘날개를 위하여’ 부분) 실종과 우울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소설집의 주인공들처럼, 암울 속에 갇히더라도 결코 출구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삶을 계속하려는 노력을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지.

문학들. 256쪽.


/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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