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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생존용사 복지 대책부터 마련해야"
생존용사 복지·의료혜택 열악, 보산도 없어
"죽기 전 마음껏 병원치료라도 받게 해줘야"
6·25 당시 제주도 육군 제1훈련소서 복무
■ 6·25 전쟁 70주년 기획…참전 용사에 듣는다
<3> 류정상 6·25 참전 유공자회 남구지회장

2020. 06.23. 19:51:59

류정상 6·25 참전 유공자회 남구지회장

“6·25 때 죽은 사람의 가족들은 국가 차원에서 보상이 이뤄졌지만 생존 용사들은 한 달 생계가 어려울 정도다. 먼 미래가 아닌 당장 생존 용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6·25 참전용사인 류정상 6·25 참전 유공자회 남구지회장(90)은 제주도 육군 제1훈련소에서 자기 몸집의 2배가량의 미군 작업복을 입고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해 죽어간 훈련병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주에서 태어난 류 지회장은 1952년 12월, 만 21세의 나이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는 6·25 전쟁 기간동안 제주도 대정읍 모슬포에 창설된 육군 제1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중 훈련소 수송병과로 차출돼 이곳에서 5년간 군 복무를 했다.

1951년 창설된 육군 제1훈련소는 대한민국 육군에 대구·부산 등에서 낙동강 전선을 펼치면서 병력 수급이 어려워지자 그나마 안전하던 제주도에 일본군이 사용하던 시설을 인수, 훈련소로 사용했다.

그가 수송병로 차출됐던 1953년 6월은 6·25 전쟁의 막바지로 중공군이 한반도를 침공하던 시기로 훈련소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전우들이 전방으로 차출되던 시기였다.

이들은 ‘강병대(강한 병사를 키우는 터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50만명 이상을 전장으로 보냈지만 제대로 된 군복도 없이 일부는 미군이 사용하던 작업복을 군복으로 사용했다.

그는 “당시 많은 훈련병들이 제주도로 몰리면서 식량과 물 수급이 어려워졌다. 훈련병은 물론이고 훈련소에서 근무하는 병사들도 열흘이 한 번 씻으면 잘 씻었다고 할 정도였고, 당연히 식수도 부족했다”라며 “이 때문에 훈련을 받던 훈련병들 중 전장에 나가 전사한 전우들도 있었지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채 죽어간 이들도 상당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6·25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훈련병들은 죽을 힘을 다해 훈련받고, 전방에서 끝까지 싸워준 전우들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6·25 참전용사 광주지부 남구지회장을 맡으면서 생존해 계신 참전용사들의 후생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류 지회장은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의 평균 나이는 90세를 훌쩍 넘는다. 그에 반해 경제적·복지 수준은 터무니없이 약한 상태”라면서 “보훈병원 외에 참전용사들이 마음껏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또 이들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6·25 전사자 유족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보상이 이뤄지는 반면, 생존 용사들은 제대로 된 보상조차 없다”며 “당장 생존 용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언제든지 작고할 수 있는 나이다”고 강조했다.

/김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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