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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아래 더 깊어진 효심’ 보성 초암정원

2020. 07.01. 13:22:35

초암정원 전경

‘햇볕 아래 더 깊어진 효심’ 보성 초암정원

60년 공력 꽃·나무숲 울창
200여종 어린 나무들 아름드리 숲
사계절 꽃이 지지 않는 낙원 돼


마음에 길이 있다.

그 길을 마음이 따라 간다. 인연이다.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엊그제도 오늘 같고, 그제도 오늘 같다.

여전하다. 어머니, 아버지는 곁에 계신다.

어느덧 여든 하고도 두 해.

끝 모를 길에 마음을 뒀다.

지나온 날을 하루같이, 하루를 지나온 날과 같이 살았다.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꿨다.

부모를 향한, 마음. 효심이다.

보성 득량면 초암마을 초암정원, 꽃밭이자 선영이다.


글·사진 우성진 기자


◇ 어머니, 걷는 길이라면…

여덟에 어머니를 여의였다. 어렸다. 이치를 몰랐다. 그래도 하염없이 울었다. 하늘의 구름은 바람 따라 떠다녔고 땅의 어스름도 반복됐다. 아래로 여섯 살, 네 살, 두 살 동생이 있었다. 어머니는 스물여덟이었다.
열여덟에 대학에 들어갔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캠퍼스는 휑뎅그렁했고 곳곳에 이름 모를 봉분이 가득했다. 봉분과 주위가 산뜻할 정도로 가지런했다. 주위에 소목들이 봉분들을 감쌌다.
깨달았다. ‘어머니 산소도 예쁘게 가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때부터 여린 꽃과 작은 나무를 심었다. 큰 수종이 아니었다.
키워주신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허리를 펴지 않으셨다. 허리는 굽어갔다. 그래도 콩밭과 고추밭은 어머니 차지였다. 아들은 그 곳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또 어머니를 여의었다. 두 분은 아버지와 나란히 바다와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계신다. 햇볕이 잘 든다.
그 아래 여섯 살 터울 두 살 누이가, 그 나이 그대로 바람과 돌로 남아있다. 애달프다.
이렇게 썼다. ‘거두시면 돌려주시는 법’ 일찍 어린 누이를 거두어 가셨던 하늘이 세상 잠깐 빛으로 왔다 되돌아간 누이를 위해 하늘은 색채와 빛을 선물하셨다. 육십 세월 전 심었던 어린 나무는 어느새 숲이 되고 꽃이 되었다’
부모를 향한, 어린 누이를 그리는 마음 간절하다.

편백길
◇ 전라남도 3호 민간정원 ‘초암정원’

초암정원은 보성군 득량면 초암마을에 있다. 전라남도 민간정원 제3호이다. 이 곳은 광산김씨 문숙공파 23대손 김선봉 선생이 장흥 망암에서 보성으로 와 살았던 명당터다.
선생의 8대 종손 청람 김재기 옹이 일찍 생모를 여의고 두 살 난 어린 누이마저 세상을 등지자 그 막막한 그리움과 자신을 정성으로 길러주신 조부모, 사랑으로 감싸주신 두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7만㎡ 너른 땅에 묘목을 심어 가꿨다.
60여년이 흘렀다. 200여종의 어린 나무들이 아름드리 숲이 됐다 사계절 꽃이 지지 않는 낙원이 됐다. 옛 선비들이 속세의 영화에 마음을 두지 않고 시서화로 심신을 닦으며 사랑방 문화를 향유했다.
신필이라 불린 보성의 명필가 설주 송운회 선생 등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260여년을 지켜온 고옥에는 예인들의 묵적과 전통생활 도구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족 묘원으로 오르는 400m 잔디 길은 선령님께서 버선발로라도 오고 가시라는 깊은 뜻이 담긴 효심의 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오르다 보면 넓은 편백림과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나와 하늘, 바람, 땅이 하나가 된다. 주인과 나그네가 따로 없다. 초암정에 이르는 3㎞ 산책로도 고즈넉하다.
그 곳에서 저 멀리 바라보면 고흥 대서, 고흥 팔영, 그리고 가까이 보성 예당평야와 득량만은 살포시 미소 짓게 하는 풍광이다.
고옥과 함께 여전한 사랑채는 지나는 길손이 날이 저물면 머물 수 있는 안식처다. 5대 째 이어오고 있다.

영산홍
◇ 꽃 향기 가득… 아름드리 나무숲 장관

김 옹은 허리에 찬 전정가위가 무겁지도 않은 지 걸음을 사뿐히 옮겼다. 꽃과 나무를 살폈다. 이야기꽃을 피워냈다.
이것은 출장화여. 양귀비가 현종에게 제가 예뻐요, 이 꽃이 예뻐요 라고 물었다. 임금은 지금은 이 꽃이 예쁘구나, 했다. 귀비는 화가 바짝 올라 꽃을 담장 너머로 던져 버렸다. 이름 하여 출장화, 황매화다. 장미과에 속해 있어 매화도 아니다. 꽃이 노랑 빛을 띠어 황매화로 불리고 있다.
이것은 목단이여. 모란이지. 진짜 귀해. 빨강, 하양 색은 있어도 이런 꽃 잎 색깔은 없지, 저것은 자목련이고,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소철, 제주도 노지에서 사는데, 육지에서는 못 살지. 어린 나무를 가져와 내성을 키워 이렇게 잘 자랐어. 겨울철 안 싸매도 거뜬하지, 종려나무랑 나란히 있으니 제법 이국적인 운치가 있어.
하얀 꽃이 일품인 태산목도 빼놓을 수 없는 명품이고.
골단초는 꽃 중의 꽃이여. 꽃의 노란부분만 딱 떼서 먹어봐. 어릴 적 배고팠을 때 막 먹고 했거든. 근데 요즘은 주위에서 보기가 드물어. 멸종위기야. 허리와 무릎에 좋다고 닥치는 대로 따 버리고 함부로 하니 그럴 수밖에, 안타까워.
저 것은 벌써 수령 100년이 넘은 고려 영산홍, 찾아보기가 어렵고 구하기도 힘들지.
홍가시나무 역시 흔하지 않아, 귀해. 은은한 멋이 일품이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에 나오는 것, 바로 이것이 철갑송이여. 장군의 갑옷처럼 굳세게 보이지.
소나무들이 예를 갖추듯 허리를 숙여 나그네를 맞이하는 곳. ‘나무가 인사하는 곳’에 이르자 김 옹은 인사를 받게~, 했다. 곧 허리를 펼 걸세~, 했다. 과연 횡렬로 늘어선 소나무 길을 지나 뒤돌아보니 어느새 소나무들이 허리를 곧게 펴고 나 보란 듯 꿋꿋하게 나란히 줄 지어 정자세를 취했다.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레드카펫을 밟고 나그네는 주인의 안내로 그린카펫을 밟았다. 선영을 오르는 잔디밭이 푹신하다.
김 옹은 살구나무와 자두, 앵두나무, 감나무들로 발걸음을 옮기며 제철에 찾아오면 아주 입에 착 감기는 과일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몇 번이고 뿌듯해 했다.
추운 지방에서는 잘 자라지 않고 남쪽에서 쭉 쭉 뻗는 대나무들과 편백림, 산다화 숲 역시 모두 김 옹의 손길로 이뤄낸 장관이다.
산책길을 되돌아 내려오다 김 옹은 어머니를 모신 자리를 바라보며 ‘그늘을 싫어하시니 큰 나무는 멀리 해야겠다’고 말했다.
마음의 길이 한결 같다. 바람이 휘~ 하고 초암정원을 보듬었다.


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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