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후 3시, 주말시간을 이용해 '인생을 얘기하는 카페투어'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모더레이터(Moderator)였다. 모더레이터는 넓은 의미로는 토론프로그램의 사회자를 일컫는 말이긴 하지만 모더레이터의 역할을 좀 더 좁혀서 말하자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각기 다른 관점과 주장들 속에서 조화로운 합의를 이루도록 하는 사람, 특별히 마음의 문을 여는 촉발자인 셈이다.

내심 걱정이되긴 했지만 총괄 진행자인 철학자교수님이 있기도 하거니와 책을 매개로 서로가 다양한 생각들을 꺼내놓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북토크 자리란 것에 기대감이 생겨 역할을 승낙했다.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참가전에 주관처에서 미리 공지한 책을 읽는 걸 전제한다.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기로 한 책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58세에 쓴 '행복의 정복'이란 책이었다.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철학, 수학, 수리논리학, 사회비평 등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한 러셀이 쓴 단 한 권의 행복론. 행복이란 끊임없이쟁취해야 하는 것이라는 러셀의 목소리가 담긴 다소 도전적인 이 책의 제목 또한 흥미로웠다. 행복이 정복의 대상 인가? 정복이 되는 건가? 질문이 생기니 책을 더 빨리 읽고 싶어졌다.

행사 날이 다가오기 전에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해 밑줄 치며 책을 읽었다. 필자는 책을 좀 아껴 읽지못하고 거칠게 다루는 편이다. 책 모퉁이를 접어 읽는 도그 이어(Dog Ear)를 활용한다.

형광 펜으로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하다 보면 중고 서점에서 읽던 책을 되팔기가 매번 어렵지만 눈 딱 감고 좀 험하게 읽는 것을 계속한다. 마치 문장을 음식 삼키듯이 노력해 읽다 보면 보다 내 것이 잘 되려나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책이 도착하고 나서 책을 펼치기 전에 문득 표지 사진이 궁금해졌다. 한 여인이 러셀의 팔짱을 끼고 수줍은 듯 밝게 웃고 있는 이미지인데 이 여인은 누구 일까 ? 궁금했다. 출판사에서 책 표지에까지 내세운 거면…북토크 시간에 얘기해봐야지 생각했다.

책은 크게 두 챕터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불행의원인 두 번째는 행복의 원인이다.

책을 읽다가 수긍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마음에 와 닿아 나도 모르게 혼자서 빙그레 웃었던 이런 문장이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에 비해서 훨씬 더 즐겁다.

왜냐하면 책을 읽을 기회는 축구를 관람할 기회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매우 현실적인 말이다. 러셀은 특히 근본적인 행복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듯함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따듯한 관심은 소유하기를 원하거나 언제나 명확한 반응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랑과는 다른 사랑이라 한다. 즉 나를 위한 무의식적 욕구 보다는 타인에게 기쁨의 폭을 넓혀 주는 사랑이 나에게도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또한 지질학자가바위에 대해서 느끼는 관심 즉 사물에 대해서 따듯하게 느끼는 관심은 우정과 비슷한 요소가 있다 한다. 말하자면 행복의 비결은 관심을 끄는 사람이나 사물에게 따듯한 반응을 보이는데서 자란다는 것이다.

그날 '인생을 얘기하는 카페투어'에 꽤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책 속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들이 매우 다를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 덕분에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최근 독일과 한국의 교육,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어 러셀의 행복론과 내용적 측면에서 다르긴 하지만 김누리교수가 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개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새삼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무엇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최근 바로 집근처 오피스텔발 코로나19확산자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 내 집도 안전지대가 아니게 된 걸 경험한다. 셀프 자가격리를 선택한다. 이럴 땐 버티는게 최선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몇권의 책과 함께 행복하게 버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