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지역
문화
스포츠
기획
특집
오피니언
사람들
열린세상
전매광장
데스크칼럼
사설
에세이

차가 키운 학생
김용국(전남문인협회장)

2020. 07.09. 11:25:09

김용국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예삐가 생각났다.

문덕초등학교 교장일 때다. 보성 다향제 차예절 경연대회에서 3학년인 예삐 앞에 사진작가들이 제일 많이 모였다.

‘예삐가 큰상을 받겠구나!’ 설레면서 발표를 기다렸는데, 동상이었다. 차예절 경연에서는 옷차림, 인사법, 차를 내는 동작, 그리고 우려낸 차의 색깔과 맛, 그리고 찻자리 정리정돈까지 평가한다. 보성교육청에서는 다향의 얼 계승을 위해 다도와 제다를 농업유산으로 체험 교육을 하고 있다. 예삐는 분위기가 행복한 가정의 4남매 중에 둘째였다. 어린데도 차분하고 이해심이 깊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고, 예쁜데 잘난 체 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잘 돕고, 통학버스 등에서 동생과 후배들을 잘 챙겼다.

중간체육 시간에 짬이 나는 학생들은 교장실에 와서 차를 스스로 우려 마시게 했다. 교장실 탁자 위에다 차와 다구 그리고 다식을 준비해 두었다. 학생들이 처음에 왔을 때는 서로 먼저 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더니, 나중엔 스스로 차례를 정했다. 그때도 예삐는 나서지 않고 조용히 양보를 했다. 어린 학생들이 내는 차는 특별한 맛이 있다. 차의 양이나 물의 양과 시간을 대충 맞추는 데도 맛있다. 차를 내는 학생이 나에게 찻잔을 가져다 줄 때 최선을 다해 얌전하고 공손하려는 것을 볼 때마다 저절로 미소가 벙글었다. 나는 학생들의 태도와 차 맛을 통해서 학교의 차예절 교육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미숙한 점과 문제점은 다도교육을 하는 선생님께 넌지시 귀뜸해 드리기도 했다.

차예절경연대회는 학교마다 공평하게 다섯 명씩 출연했다. 전교생 중에 5명을 선발하는 것을 다도교육을 하는 선생님의 주관에 맡겼다. 대표 명단에 3학년인 예삐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학년이 더 잘 숙련되어서 유리할 텐데, 왜 3학년인 예삐를 뽑았는가 물으니 태가 좋단다. 예삐는 평소에 집에서도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차를 낸단다.

교장실에 들어오는 예삐가 싱글벙글 웃었다. 예삐 차례가 된 것이다. 찻자리에 앉은 자세가 바르고 손동작이 자연스러웠다. 차 생활이 기본인 정·조·결(精·燥·潔)이 몸에 배어 있어 대견했다. 차 맛도 민감하게 구분했고, 차를 내다가 차가 한 톨이라도 떨어지면 정성껏 집어넣었다. 찻자리를 짧은 시간에 정갈하게 마무리했다.

예삐는 학교 생활 중에도 무슨 일이든지 곰곰 생각해보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어서 처리했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았다.

6학년이 된 예삐 소식을 들었다. 학생회장(예전의 전교어린이회장)으로 뽑혔는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단다. 차예절 경연대회에서도 큰 상을 받았단다. 전교생이 예삐를 왜 좋아하는 알기 때문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즈음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는 자녀들 때문에 부모들 걱정이 태산이란다. 온라인으로 공부를 한다지만 건성이다. 마친 과제를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선생님께 보낸 뒤에 마냥 뒹굴거리며 논다.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질어 놓고, 어른들 말을 도통 듣지 않는다. 과자와 라면을 먹으면서 점심을 거르고, 컴퓨터 게임하고 텔레비전 보다가 하루를 금방 보내버린단다.

또 예삐 생각이 났다. 많은 가정이 예삐네 식구들처럼 날마다 찻상에 들러 앉아 오순도순 차를 마시면 참 좋겠다. 차담(茶談)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공부와 생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이 찻상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도 차예절로 익힌 정리 습관으로 공부방은 물론 집안 정리도 잘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코로나19로 공포와 두려움에 빠져있을 때, 차를 함께 마시는 예삐네 식구들은 든든하고 평온할 것이다. 차로 잘 자라는 예삐가 대견하고 장한 장래가 기대된다.

정치

사람들

경제

사회

기사 목록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