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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중단된 김봉곤 작가의 소설집 ‘여름, 스피드’ |
지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한국 소설가 중 최초로 자신이 ‘게이’임을 선언하며 커밍아웃한 동시에 근래 한국 소설에서 주목받고 있는 ‘퀴어’라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며 빠른 속도로 유명세를 얻은 김봉곤 작가가 그 당사자다.
사건은 지난 10일 트위터에 올라온 글로부터 시작됐다. 올해 초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단편 ‘그런 생활’에 자신과 나눈 사적인 카카오톡 메시지 대화가 단 한 글자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수록됐다는 피해자의 폭로가 있었던 것. 작품을 게재하기 전 자신이 발표할 소설에서 자신을 언급해도 되겠냐는 부탁에 허락하긴 했으나, 최소한의 가공도 거치지 않은 채로 성적수치심이나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까지 고스란히 담긴 것이 문제였다. 피해자는 김 작가가 소설을 문학과지성사로 송고한 이후, 자신이 그 글을 확인하고 강력히 반발하며 수정을 요구했으나 김 작가가 수정 요구를 단 한 차례도 수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자 지난 17일, 또 한 차례 김 작가에 대한 폭로글이 트위터에 게시됐다. 한 남성은 자신이 김봉곤 소설집 ‘여름, 스피드’에 나온 ‘영우’가 자신이고, 비록 자신의 이름은 영우가 아니나 소설 속 영우의 모습과 행동을 보고 주변 지인들이 자신이 영우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당혹감과 분노, 모욕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거 자신이 김 작가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이 동의 없이 동일한 내용과 맥락으로 소설 도입부에 인용됐다고 덧붙였다. 그 증거로 그가 김 작가에게 전송한 페이스북 메신저 메시지 내용을 캡쳐해 올리기도 했다. 폭로 이유에 대해 그는 “‘그런 생활’에 나오는 ‘C누나’의 실제 인물임을 주장한 여성의 폭로에 자신도 용기를 내게 되었다”며 “김 작가가 전날 SNS를 통해 올린 해명 글을 읽고 그 결심을 굳혔다”고 설명했다. 자신이라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끼친 가해를 무시한 채 결백함을 주장하는 면피 의식이 미웠다는 것.
폭로자들은 김 작가 뿐만 아니라 출판사의 태도에도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다. 단편 ‘그런 생활’에 상을 수여하고 작품집을 출간한 문학동네는 물론 해당 단편을 수록한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펴낸 창비에게 피해 사실을 적시한 공문을 보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퀴어와 관련된 주제의 소설을 창작하며 일종의 ‘당사자 문학’이라는 특성으로 주목받은 김 작가였기에 독자들의 충격은 컸다. 성소수자를 중심에 둔 최초의 문학작품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자신의 경험과 픽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오토픽션’을 통해 문학계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된 폭로가 이어지자 온라인 상에서 문학동네와 창비, 그리고 김 작가에 대한 비판이 계속됐다.
그제서야 출판사들도 대응에 나섰다. 문학동네는 지난 17일 홈페이지에 ‘더 이상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추가 조치로 ‘여름, 스피드’와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판매를 중지한다’고 밝혔다. 창비 또한 ‘시절과 기분’을 판매 중단하며 재차 사과했다. 17일 추가 폭로가 나오기 전까지 명확한 답변과 사과를 내놓지 않던 출판사들이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의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문제가 된 작품이 실린 단행본과 소설의 판매를 중단한다 해도, 그 전까지 보였던 출판사들의 태도와 후속 조치가 미흡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사건, 시인 고은과 소설가 박범신에 대한 미투(me too), 그리고 올해 초 소설가 윤이형이 폭로한 ‘이상문학상’의 수상작 저작권 문제까지. 매년 문학계는 논란의 중심에 서지만 그 때 뿐이다. 문단 외부의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적극적이지만, 문단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책도, 변화를 위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출판·문학계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