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기나긴 학업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언제일까? 중3이나 고3, 아니면 대학 4학년일까? 관련 학자들은 초등학교 3학년 시기라고 답한다. 초등학교 3학년 시기는 이후의 학습 성패의 큰 흐름을 시작하는 변곡점(pivot point)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읽기 또는 독해능력 수준이 이후의 학교 공부와 사회생활의 성공 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고등 정신기능인 창의력과 사회적 역량이 중시되면서 기본적인 어휘력 등 지식교육이 상대적으로 약화돼 있다. 책을 읽어도 뜻을 모르고 선생님의 교과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수업 중에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운 교실의 모습이 일상화돼 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2006년까지 세계 1~2위였던 우리의 15세 학생 학력수준은 2018년 평가 결과 읽기 9위, 수학 7위, 과학 7위로 추락해 이제 더 이상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교육선진국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

현재 한국 교육의 위기 현상인 학교 부적응 학생 증가, 사교육 팽창, 계층간 교육격차 심화 등의 문제들이 초등 3~4학년 시기의 어휘력 저하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 아닐 수도 있다. 정부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2017학년도부터 시작하여 현재 적용되고 있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언어교육과 국어사전 활용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구체적인 국어교육 강화 방안으로 초등 1~2학년 동안 27차시 배정했던 한글교육을 62차시로 두배 확대됐다. 특히, 국어사전 활용 수업도 두배로 확대됐다. 2017년까지 초등 4학년 1학기에 9차시만 배웠던 것을 2018년부터는 3학년 1학기 '반갑다, 국어사전'에서 8차시, 그리고 4학년 1학기 '사전은 내 친구'에서 9차시로 2년간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강화되었다.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초등 3학년 전후로 국어교육을 제대로 실시하려는 정부 수준의 정책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 특히 우리 지역에서는 국어사전 활용에 대한 관심과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 걱정이다. 수업 중에나 혼자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습관적으로 사전을 찾아 확인하고 이해해야 할텐데 사전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2년 전부터 매월 정기적으로 농어촌 초등학교를 찾아 국어사전 기부 활동을 하면서 그 원인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식의 보고인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되는데 구태여 불편한 종이 국어사전을 찾아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디지털 기술 맹신을 들 수 있다. 또한 초등학교는 무상의무교육 단계라 선생님들은 개인적인 국어사전 구입을 안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안내해 주지 않으면 직접 서점에서 좋은 사전을 골라 자녀에게 선물하고 함께 찾아 보는 대도시의 부모들처럼 지원해줄 수 있는 농어촌 학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은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관심있는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학습하면서 학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번 기회에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어휘력 수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대책이 국어사전 활용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 같다. 국내 유명 서점의 도서판매 종합순위에서 주간 베스트 10위 안에 들 정도로 종이 국어사전의 인기가 높아진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국어사전이 예상 밖으로 높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에서 국어사전 수업을 두배로까지 확대하면서 강조하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도 지식교육 중시와 국어사전 활용을 디지털 문명에 역행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국어사전의 효과를 모르는 교사, 학생, 학부모들도 많다. 그러나 지식교육, 기본 어휘력, 그리고 국어사전을 경시하는 관점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고, 미래 역사의 주인공들을 무식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