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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16>석현 박은용
전라도 민초들의 삶을 사랑하고 표현했던 예술가

2020. 08.06. 12:02:12

석현 박은용 작 ‘청옥동 풍경’. 1982. 석현 특유의 점묵법으로 치열하게 그려진 농촌 풍경. 1983년도 서울 개인전에서 이와 같은 화풍으로 주목을 받았다.

진도 출신…조대부중·고 거쳐 서라벌예대 진학
변관식 교수 영향 졸업 후 한국화로 방향 선회
화순 두강마을 16년동안 대표적 회화세계 구축
굴곡진 삶 속 금쪽같은 예술 투혼 오늘에 남아

한 명의 고독한 예술가가 생전에 그리 빛을 보지 못하고 삶의 모순과 고난을 못 이겨 자진해서 생을 마감했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석현 박은용의 예술가적 삶이 그랬다. 독보적인 한국화의 세계를 구축하면서도 그는 유난히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했다. 그의 그림을 좋아한 것이지만, 묘하게도 그의 삶은 고흐를 닮아 있다.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면서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화순의 두강 마을에 손수 작업실 겸 집을 짓고 이상적인 농촌의 삶을 살려고 했지만, 현실은 늘 배반적이었다. 극단적인 선택이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1983년 서울 동덕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당시. 왼편부터 배동환, 최쌍중, 박은용, 박복규, 박동인.
박은용은 1944년 진도 의신면에서 출생했다. 어릴적부터 미술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광주에서 미술부가 유명한 조대부중·고를 다니게 된다. 14세때 지산동의 오지호 선생을 만났다든지, 고등부 시절 전국학생 미술 실기대회에서 연 2회 최고상을 수상한 것도 그의 발군의 실력을 입증한다.

1960년 광주권 고등학교 미술부 모임인 청자회에 참가하는데, 당시 김기수, 송 용, 홍진삼, 우제길, 임병규, 최쌍중, 배동환, 박동인, 박은용, 최재창 등이 회원으로 참가했고 오지호, 양수아, 강용운 선생을 고문으로 모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63년 서울의 서라벌 예술대학에 진학한다. 서울 답십리에 기거하면서 광주 출신 작가들 강연균, 최쌍중, 배동환, 최정길, 이병운, 유제필 등과의 교류가 편지로 남아있다. 대학에서 당시 서양화 전공으로 장리석, 최영림, 안상철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졸업 후에는 한국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재학시 변관식 교수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김화경, 김정현의 화풍을 좋아했다. 대학에서 그는 새로운 예술 세계에 대한 개안을 했다. 특히 소정 변관식의 농묵에 의한 개성 넘치는 산수는 남화에 뿌리를 박고 있던 광주권과 사뭇 다른 것이었고 이에 자극받아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석현 박은용 작 ‘무더운 날’. 1997. 두강마을 시절의 걸작으로 농촌에서의 가족 관계에서의 행복감이 화사한 색깔로 표현되어 있다.
1983년 서울 동덕미술관에서 가졌던 개인전은 석현다운 그림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알렸던 것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이 전시를 위하여 청옥동에 집을 얻어 그림에 몰두했는데, 농촌의 현실경을 다루면서 점과 선의 필선이 갈필로 중첩되면서 탁하지 않게 하고, 빠르게 말리기 위하여 불을 때서 방안 공기를 건조하게 하며, 구도는 화면 전체를 채우면서도 촘촘한 먹선 사이로 틈틈이 여백이 감지되는 독특한 화풍이었다. 신인상주의의 점묘와 변관식의 농묵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농촌의 자연경과 그 안에서 노동하는 농부의 삶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있었다.

1950년에 7살이었던 석현은 인민재판으로 부친과 가족이 평소에 알던 동네 사람들에 의해 타살되는 장면을 목도했다. 1980년대 초 석현은 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빨강색 물감 쓰지 마소, 큰일 나네.’, ‘25일 날 광주가 물에 잠기네….’

1989년 4월 두달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그 직후 가족 합의로 이혼하고, 1990년 재혼하게 된다. 이 무렵부터 화순 두강마을로 들어가 손수 화실과 집을 짓고 살게 되는데 그의 화풍 역시 크게 변화를 갖는다. 치열한 점묘 방식에서 벗어나 굵고 단순한 형태로 윤곽을 그리고 채색이 가미된다. 가족 중심의 농촌에서의 삶이 주제로 떠오르며 행복감이 충전된다. 아마도 석현의 대표적 회화 세계가 두강마을 16년의 세월 속에서 완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귀가1>
1999년도 서울 동덕아트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은 두강마을 시절의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보였던 것으로 1996년 결성된 석현의 후원모임 두강회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1997년 작 ‘무더운 날’이나 1998년작 ‘모녀’를 보면 여인이 딸과 혹은 혼자 목욕하는 모습이 클로즈 업 되어 있고 재래식 가옥 주변은 농촌의 정경인데다 목욕실 밖의 전경은 여러 가지 꽃이 만개한 꽃밭과 옥수수, 복숭아, 수박이 담긴 바구니로 채워져 화사하고 행복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욕실 뒷켠 공간에는 어미 소의 젖을 빠는 송아지, 그 뒤로 농사일을 마치고 막 돌아오는 남자(석현 자신인 듯)가 보인다. 여기에는 그 어떤 불안 증세도 없다. 그러나 안정적 완성 태를 보이던 석현의 작품 세계와 상관없이 경제적 여건은 더 어려워져서 삶은 점점 더 절망적 국면으로 치달았다.

2006년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에서 ‘수묵화 3인 초대전’ 당시 석현은 자신의 작업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긴다.

‘나는 우리나라의 평범한 산하와 들을 지키며 일구는 농부와 어부, 외딴 농가와 전답, 그리고 당산나무와 고인돌, 근로하며 생활하는 인형(仁兄)들을 사랑하기에 즐겨 그리고 현장 생활체험을 통해 작업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국민들의 먹거리를 만들며 유통하는 민초들의 현장에 생활하며 한국화의 전통재료와 기법을 바탕으로 현대의 일반 국민의 정서에 맞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이 땅에 뿌리박고 사는 민초가 되어 그 삶을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열정을 쏟던 그는 2008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018년 12월 광주시립미술관은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석현 박은용-검은 고독, 푸른 영혼’ 전을 개최했다. 그의 삶은 감당하기 어렵게 굴곡진 것이었지만, 그의 예술 혼은 금쪽 같은 빛을 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독특한 점묵법에 의한 수묵 실경을 비롯해서 농촌의 삶이 발할 수 있는 최선의 행복감을 표현하는 두강마을 시절의 회화성을 구축해내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도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장석원(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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