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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공리주의 관점에서 대응해야
개인자유 보다 대중 안전 중요
특정세력에 공중방역망 뚫려

2020. 08.31. 14:35:58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뉴스를 보고 있자니 집회 등 각종 모임을 하지 말라는 정부의 지시를 어기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어쩜 저리도 많은지 한숨이 나온다. 정부와 지자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집회를 강행해 코로나19 감염을 재확산시킨 단체는 오히려 정부를 고발했다고 한다. 정부의 방역실패로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억지스러움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이뿐 아니다. 기도하면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는다며 신도들을 대규모 집회장으로 내몰았던 모 목사도 확진판결을 받은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목사는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 공분을 샀다. 특정 종교인들과 특정 세력의 막무가내식 대규모 집회가 우리사회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리들의 조직적인 행동이 선량한 불특정 다수의 국민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저런 작태를 집회와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든다. 사회전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일부 억압할 수 있는 법과 제도적인 장치마련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뒤 테러가 잇따르면서 세계 각국은 이런 고민들을 해봤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실행중인 국가도 있을 수 있다. 영화 '언싱커블 Unthinkable, 2010년작'을 보면 이런 고민이 잘 표현돼 있다. 영화줄거리를 요약해보면 아랍출신의 전직 미군 핵무기 전담요원 영거(마이클 쉰)는 미국 주요 도시의 중심가에 핵폭탄을 설치하고 협박비디오를 미정부에 보낸다. 하지만 곧 미 국토안보부에 체포되고, 핵폭탄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고문전문가 H(사무엘 L.잭슨)가 투입돼 테러리스트 영거를 비인간적으로 고문하기 시작한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영거가 일부러 수사기관에 잡혔다는 게 밝혀진다. 이 과정에서 H와 함께 수사에 참여하게 된 FBI요원 브로디(캐리 앤 모스)는 H의 비인간적인 고문에 반발하면서 H와 서로 팽팽하게 대립한다. 테러리스트 영거는 잔인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핵폭탄 설치 장소를 두고 H, 그리고 브로디와 맹렬한 공방을 벌이며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간다. 3일이라는 시간내에 여러곳에 설치된 핵폭탄을 찾아내 해체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인 만큼 H는 테러리스트 영거의 아내를 취조실로 데려와 자백을 요구하다 결국 그 앞에서 아내를 살해해 버린다. 울부짖는 영거를 보며 H는 그의 자녀들까지 데려와 고문을 하려한다. 자녀들이 끌려온 모습을 본 영거는 결국 폭탄이 설치된 장소를 실토한다. 하지만 H는 문을 잠그고 영거의 자녀를 고문하려 한다. 이에 수사팀은 문을 부수고 영거의 아이들을 빼낸 뒤 집으로 돌려보낸다. H는 수사팀에 끌려 나오면서 영거를 향해 사라진 플루토늄의 량으로 볼 때 폭탄은 3개가 아니라 4개라며 나머지 한 개의 위치를 말하라고 다그친다. 이를 지켜보던 수사팀 리더는 다시 영거의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영거와 사사건건 대립했던 FBI요원 브로디는 이런 상황에 넌덜머리가 난 듯 "폭탄이 터지더라도 이건 아니다"며 소리를 지른다. 이에 H가 포기한 듯 영거의 결박을 풀어주자 그는 곧 권총을 탈취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영화는 핵폭탄 3개를 해체하는 장면이 나오고 잠시후 감춰진 다른 핵폭탄이 폭발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고민케 한다. 먼저 수천만명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테러범과 가족을 고문해서라도 핵폭탄의 위치를 확보했어야 한다는 것과, 범죄자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논리가 충돌한다. 영화는 후반부에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브로디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만 핵폭탄이 터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과연 어느 게 맞는 것인지 모든 걸 혼란스럽게 한다.

사실 이런 고민은 1700년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을 추구하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에서부터 진행돼왔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테러범 영거의 존엄성은 그리 큰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공리주의가 발표된지 300여년이 지난 최근에 다시 이런 논리가 조명되는 것은 아마도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감염원이 돼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새로운 공리주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제는 바이러스로부터 우리사회를 지키기 위해 좀 더 강력한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박원우<편집국장>


박원우<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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