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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20> 탐험가, 김현국
오토바이로 대륙 질주하는 디지털시대 징기스칸

2020. 10.15. 12:07:29

1996년 러시아 하바롭스크 아무르 강 앞에서 대륙 횡단을 앞두고.

1996년 28세에 세계 최초 오토바이 시베리아 횡단
2014년 2차 횡단, 유럽 북단 종단까지 2만5천㎞ 성사
2017년 9명 바이커들과 블라디보스톡~바이칼호 왕복
예술가만이 할 수 잇는 무모한 도전 실행에 옮겨 주목

2019년에 그려진 이동 루트 키워드.
그의 눈빛은 초롱초롱했고, 몸 전체에서 대륙을 관통해온 거센 바람이 느껴졌다. 그는 예술과 무관한 사람이지만 그의 발상은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무모한 도전’을 품고 있었고, 그는 이를 실행에 옮겨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 직종이 없었던 ‘탐험가’로서 그는 자신 만의 삶의 지표를 만들어 나갔다. 현대에 전 지구적으로 어떠한 오지가 남아 탐험해야만 할 곳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의 도전에 대한 논지는 누구보다 명료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공부보다 데모를 더 했습니다. 마침내 민주화 요구가 받아 들여져 직선제가 채택이 되었을 때에 승리에 도취되었었죠. 그러나 김대중, 김영삼씨가 단일화하지 못하고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에 좌절감에 매일 술만 마셨죠. 그러다가 군대에 가게 되고, 전역 후 대학을 다니면서도 변화에의 열정을 풀길이 없었죠….”

그는 1996년 3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3개월간의 준비 끝에 모스크바까지 12,000㎞의 여정을 오토바이로 달려 4개월 만에 도착한다. 세계 최초의 오토바이 시베리아 횡단이 이루어진 것이다. 28살의 무모한 청년이, 전남대 법대를 다니던 데모꾼 학생이 아무도 모르게 일으킨 대반란, 그것이 그의 첫 탐험이 되었다.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암스텔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장정 중 반환점인 네델란드 로테르담 뉴욕 호텔 앞에서.
2019년 뉴욕 The Explorers Club에 가입하고 기념사진 촬영.
김현국. 1968년 생. 그는 탐험 하나의 인생을 사느라 무직으로 지금까지 삶의 가파른 파고를 버티고 있다. 사실 탐험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그리고 광주권 사회는 척박하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사람들은 꿈을 상실하고 제도적 장치에 익숙해지며 그 어떤 도전도 위태롭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아무런 질문도 답도 없는 시베리아 횡단 같은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김현국은 1997년 모스크바로 가서 3년 간 살다가 귀국해 N(New, Nomadic, Net)-실크로드 대장정을 준비해 전 세계 청년 300명이 14,000㎞ 실크로드를 횡단하며 이동구간에서 만나는 국제적 프로젝트를 준비하지만 막바지에 뉴욕에서 무역센터를 무너뜨리는 테러가 일어나면서 무산되고 만다.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쳐 힘든 과정에서 2014년 한·러 무비자 협정 체결과 2010년 러시아 횡단 도로 완결 소식에 다시 시베리아 횡단을 도전하게 된다. 2차 횡단은 2014년 6월 초부터 11월 초 사이에 시베리아를 횡단해 네델란드 암스텔담에 도착해 이후 유럽 북단까지 종단하는 25,000㎞의 육로 왕복 프로젝트를 성사시킨다. 2017년도에는 부산에서 만난 9명의 바이커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7,000㎞의 여정을 왕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는 말하기를 “지하자원의 보고이자 68억명이 살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은 세계 육지 면적의 40%, 인구의 70%, GDP의 60%를 점유하는 최대 단일 대륙으로 21세기 마지막 개척지”라고 한다.

통일을 전제로 무한히 열릴 수 있는 대륙의 길, 유라시아로 연결되는 실크로드의 재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실크로드를 향한 열정과 집념, 그것이 그를 시베리아 횡단과 관련된 탐험 프로젝트로부터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징기스칸처럼 혈혈단신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질주하던 그를 보고 디지털 시대의 징기스칸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현대판 징기스칸은 말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아무도 따르는 이 없이 대륙을 질주하는 것일까? 기실 예전에야 당을 차지할 목적으로 정복을 단행했지만, 현대에는 땅의 소유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경제적 교류와 의사소통이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2000년대 후반 그는 전남대 내 연구실에 자주 놀러 왔다.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있기도 했지만, 나하고 말이 통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국제적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사용할 로고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디자인 전공의 유재균 교수를 추천해 주었다. 만나자마자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유 교수의 광기 어린 행보에 애초의 목적은 까맣게 잊고 둘은 어울려 다녔다. 그 사이에 가수 김원중도 끼어들어 분위기가 볼 만 했다. 자신의 아파트를 개인전 공간으로 오픈하기도 하고 자신의 승용차 지붕 위로 올라가 구르기도 했던 유 교수를 그는 끈질기게 좋아했다.

김원중이 노래한 ‘나는 바이크 타고 시베리아에 간다’에는 ‘… 길 위의 사람들 바이크를 앗으려 하고 우-우-, …숲 속의 짐승들 시퍼렇게 불을 켜고 나를 노리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김현국은 예기치 못하게 마주한 유 교수의 광기에, 그 에너지에 쏠렸던 것일까? 그 광기에 어느 날 타계한 유 교수의 상가에 아무런 조문객 없이 김원중 홀로 테이블에 앉아 있던 기억이 선명하다.

2020년 9월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전주를 방문했다. 갑자기 내가 보고 싶어 기동을 했다는 것이다. 승용차를 운행하겠다더니 계획을 바꿔서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 그 차는 승용차로 대륙 횡단을 하기 위해 마련했지만, 곧 폐차를 한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계획을 알리기 위해서 매스컴이나 정치권을 기웃거리지 말라고…. 본인이 할 수 있는 탐험 프로젝트를 가장 멋지게 만들어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라고…. 술마시면서 한 소리라 모두 헛소리일 수 있지만 그는 기쁘게 생각하면서 노트에 받아 적는다.

한 마디 덧붙인 것은 탐험가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이나 예술가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과정이나 다르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모험도 하고 새로운 계획도 세운다. 그것이 예술가의 작업 계획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인생은 꿈이 있어야 희망을 갖게 되고 그 희망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것마저 허상이랄 수 있겠지만, 꿈이 없는 인간은 무료하고 진부하기 마련이다.

/장석원(미술평론가)

12,000㎞를 오토바이로 횡단, 모스크바에 도착해 성 바실리 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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