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시인

“제가 시인이라는 거 아시죠?”

수 년만의 전화 속 대뜸 던지는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1990년대 중반으로 20년 넘는 시간을 기억이 빠르게 줄달음 쳐 그를 알게됐던 시기 김호균이 시인이었음을 가까스로 기억해 냈다.

“제가 시집을 냈습니다.”

당황도 잠시였던 건 그가 이제서야 첫번째 시집을 냈다는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몸 담았던 그는 작년에 문화전당을 나와 시집 준비에 전념했다고 한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세숫대야論’이 당선되며 등단한 이후 26년만에 펴내는 첫 시집인 것이다.

걷는사람 시인선의 스물아홉 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시집 제목은 ‘물 밖에서 물을 가지고 놀았다’다. 오래 묵힌 작품인 만큼 기대가 크지않을 수 없었다. 과연, 시 한 편 한 편이 가지는 발화가 묵직한 힘을 발산한다.

시집은 4부 54편으로 구성됐다. 1부 슬픈 순환, 2부 진달래는 메가폰이다, 3부 생명을 틔우는 마술, 4부 최후처럼 주저앉고 최초처럼 일어서는 등 각 파트의 제목부터 시인의 뉘앙스가 짙게 스며있다.

각각의 시는 ‘소금쟁이’, ‘전어’, ‘짱뚱어’, 숨구멍‘, ’되새 떼‘, ’놋 세숫대야‘ 등 소재도 새롭다.

시인은 기발한 오브제를 통해 “세상 그 속에 있되 세상 그 속에 빠지지 말라”고 주문한다. 네 편과 내 편, 적과 동지만이 가능한 세상에서 시인은 어느 편도 아닌 ‘짱뚱어’이거나 ‘소금쟁이’다. 또 하나의 눈, 즉 ‘제3의 눈’이고자 한다.

“나는 시를 믿는다. 시는 나를 망가지지 않게 지켜주었다. 낡은 안경처럼 오래되었으나 그것으로 오롯이 내가 가야 할 앞길을 놓지 않았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경계에서,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면 좋겠다.”

시집 첫 장에 실린 시인의 말이 각각의 시에 꽂힌다.

시집 제목인 ’물 밖에서 물을 가지고 놀았다‘는 시 ’소금쟁이‘의 첫 행에서 가져왔다.

’물 밖에서 물을 가지고 놀았다/ 물 안의 개펄에 결코 빠져들지 않았다/ 일생을 물에서 살면서도/ 온갖 유혹 뿌리치며 살았다// 소금쟁이는 발목만 담근 듯 만 듯/ 그러니까, 세상과는 아주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사뿐사뿐 가지고 노는/ 힘//…// 늪에서 일생을 보내면서/ 누가 그렇게 살았을까‘

그의 또 다른 자아인 소금쟁이는 일종의 ‘경계’를 제 영역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호수의 가장 낮은 곳이자 고인 물의 가장 최상부인 수면에 가늘고 긴 네 가닥의 발을 딛고, 두 세계가 가해 오는 압박을 삶의 조건으로 살아가는 소금쟁이의 영역.

발문을 쓴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김호균이 감추어진 은유들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식물과 동물과 늙은이들, 그리고 무덤에서다. (중략) 이것들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모두 지상에 발붙이고 있거나 뿌리내리고 있거나 묻혀 있거나 곧 묻히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발밑으로부터 생의 구심력을 찾는 김호균 시인을 주목했다.

김 시인은 광주 출신으로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광주매일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걷는사람. 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