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문不二門 돌층계에 매운 햇살 한 줌 머물러 있고, 삼층석탑 위로는 칼칼한 삭풍 한 자락 스쳐 지나갑니다. 산바람이 우려낸 풍경소리가 속진俗塵으로 얼룩진 속뜰을 대웅전 앞 뜨락으로 이끌어 놓습니다. 시방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짚어봅니다. 힘겨운 소용돌이를 몰고 온 코로나 역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상을 살며,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이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새해를 맞아 찾은 근교 산사입니다. 산새 두 마리 무량수전 용마루 너머로 날아갑니다. 허공엔 이기利己와 아집의 그림자가 그물처럼 걸려 있습니다. 그것을 걷어내기 위해 미진한 마음자리에 노둣돌을 놓아야 할까 싶습니다. 그래야겠습니다. 사는 일은 사랑하는 행위의 연속이라는 점을 다시 새깁니다. 사랑은 낮은 곳으로 스며드는 일이고, 서로 나눌 때만 유지될 수가 있다는 사실도 다시 깨닫습니다. 서로를 묶는 끈이자 통로인 사랑이 통교 되지 않는 삶은 경직되고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요. 사랑이 흐르지 않는 삶은 본능에 머물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고통과 기쁨의 통합이 행복이겠지만, 삶을 온기로 덥혀 주는 바탕은 사랑이겠지요. 마음속이 어지러울 때가 허다한 게 세상살이요, 슬픔이 포탄처럼 터져 속울음 할 때가 잦은 것이 삶이지만, 서로 손잡고 빛으로 어둠을 걷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픔이 쌓이면 고통이 되고 고통이 길어지면 슬픔이 되겠지만, 슬픔이 익어 향기가 배면 외려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기실 사랑이 아니던가요.

어둠 속에서 빛과 같은 것이 사랑이지요. 사랑이 없는, 나누지 않는 삶은 맹목이며 무모한 동물적 삶일 뿐이지요. 사랑이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자기애愛밖에 되지 않으며, 자기애는 이기심의 다른 이름일 뿐이고요. 사랑의 눈길이 밖으로 향할 때 의미와 가치는 더 깊어질 것입니다. 사랑은 삶에 깊은 의미를 불어넣는 훈기이자 소통의 윤활유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아름다운 모습이 되며 참다운 꽃을 피울 수 있질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사랑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이 되어야겠지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기에 무엇보다 자기희생이 필요할 테고요. 사랑은 흐르려는 속성이 있기에 가두어 두면 언젠가는 썩게 마련입니다.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폭이 더 넓어지며, 의도하지 않아도 다시 되돌려 받는 게 사랑의 정체가 아니던가요. 자신만을 위한 안위, 나만을 위해 쌓아두는 풍요로 참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증언합니다. 생의 막바지 에움길에서 유일하게 남는 것은 나누고 베푼 사랑뿐이라고. 자신의 일신만을 위한 욕망과 집착은 결국 성찰과 참회를 불러올 뿐이더라고요. 사랑은 증오나 무관심까지도 껴안는 관계의 본질이며 행복의 소중한 질료입니다. 또한 삶을 이루는 고갱이이고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이며 기운을 북돋아 주는 에너지지요. 사랑은 학벌 지식 물질 권력과도 아무 관계가 없는 순수함이며, 진실한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최상의 덕목이자 가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인간 행위의 뿌리이며, 어떤 삿된 감정도 정화할 힘을 지니고 있을 테지요.

삶을 진실하게 이끌어주는 유일한 수단이자 근원은 사랑임이 분명합니다. 결국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나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죽어가기에 서로 사랑하며 살 일입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사랑뿐입니다. 애오라지 사랑만으로 가득 채워도 아쉽고 짧은 게 우리 생이 아니던가요.

대웅전 앞의 텅 빈 충만, 비어 있지만 내밀한 전언傳言으로 가득한 뜨락입니다. 사랑의 온기가 미약한 저로선 스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경세警世의 풍경소리, 옷깃 여미고 귀담아듣습니다. 바람결이 닿기 전에 스스로 우는 풍경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울림입니다. ‘눈물 한 방울로라도 자비를 베풀고 서로 사랑하라’는 경전 한 자락이 풍경소리에 실려 느껍게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