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도 금세 한 달이 훌쩍 지났음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 뭐든지 빠르고 급한 일상을 잠시 뒤로 한 채 근현대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담양 ‘추억의 골목’으로 향했다.

다양한 소품들로 70~80년대 우리나라 근현대의 모습을 복원해놓은 ‘추억의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명보극장’이 눈에 띄었다. 명보극장은 1957년 서울 중구에서 개관, 작품성은 뛰어나나 잘 볼 수 없었던 비상업적인 영화들을 상영하기도 했으며, 한국 최초 최첨단 사운드 시스템 설치 등 다양한 방면으로 한국 극장계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극장이다. 비록 명보극장은 2000년대에 들어서며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대거 등장함에 따라 그 경쟁구도에서 버티지 못하고 경영난으로 2008년 폐관했으나, 그 당시 영화인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애인을 기다리던 이들의 설렘 등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입장료를 내고 골목 속으로 들어가니, 무언가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이 펼쳐졌다. 가전제품을 판매하거나 수리해 주던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옛 금성티비 속 광고에서는 촌스럽지만 그 당시에만 느낄 수 있었던 레트로 감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추억의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오는 70~80년대의 롤러장.

구멍가게 등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옛 가게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오래된 세월만큼 소품에도 먼지가 쌓여 낡은 모습이었지만,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삼양라면의 옛 포장지와 어렸을 때 먹던 사랑방 선물 사탕 등 처음 보는 것 들과 추억의 물건들이 한 데 모여 있어 재미있는 볼거리를 선사했다.

굽이굽이 들어갈 수 있도록 조성된 골목은 옛 장터가 연상되도록 꾸며졌는데, 제사를 지낼 때 쓰는 목재그릇이나 사기그릇 등이 눈에 띄었다. 장터가 조성된 부지 한 켠에는 닭장과 염소 우리가 있어 옛 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실제 있었던 ‘오봉국민학교’를 모티브로 꾸며진 ‘오봉국민학교’

1970~80년대 모습이 묻어나는 골목.

추억의 골목 입구로 들어서면 볼 수 있는 골목과 메인 건물의 모습.

넓게 조성된 장터를 지나 들어가면 ‘추억의 골목’ 의 메인 구경거리라고 할 수 있는 큰 건물이 등장한다. 옛날에 모텔로 운영되던 건물을 매입, 방 한 칸씩을 다른 주제의 테마로 꾸민 이 곳에 들어가면 옛 신혼집, 카메라 가게, 사진관, 가발 가게 등 70~80년대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추억의 디스코가 흘러나오는 롤러장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비디오대여점 등이 눈길을 끈다.

옛날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구멍가게 내부 모습.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 위치해 있었던 실제 국민학교를 모티브로 한 ‘오봉국민학교’도 볼 수 있다. 작지만 복도 곳곳에 붙여진 상장과 쥐잡기 캠페인, 교실 중앙에 놓인 난로 등 옛날 책으로만 보았던 교실 풍경이 정겨우면서도 신기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비디오대여점.

비록 70~80년대를 살아간 장본인은 아니지만,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추억의 장소들을 돌아다니자 새삼 부모님의 청춘을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그 언제보다 편리하고 빠르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투박한 옛날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사람들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도 멀어지는 현재, 옛 투박한 골목 속에 묻어있는 사람 냄새가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