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지역
문화
스포츠
기획
특집
오피니언
사람들
전매광장
화요세평
열린세상
데스크칼럼
사설
에세이

2월, 조희룡의 ‘매화서옥’을 생각하며
데스크칼럼/이연수(문화부장)

2021. 02.23. 17:52:29

매화 꽃망울이 방울방울 맺히는가 싶더니 기온이 오르자 금세 후두둑 꽃망울을 터트렸다.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중외공원의 홍매화, 이번 주 방문한 무각사에도 매화가 활짝 피었다. 자욱한 매화 향기 속 시립미술관에서는 직헌 허달재 화백의 매화전 ‘가지 끝 흰 것 하나’가 열리며 봄 기운을 한층 더하고 있다.

유난히 눈 소식이 많았던 지난 겨울을 보내고서 더욱 반가이 봄 소식을 전하는 매화…. 더위와 추위가 오락가락한 날씨 속, 2월엔 그렇게 매화를 만난다.



=조선의 매화 그림 중 으뜸

눈이 내리듯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깊은 산골에 조그마한 선비의 집 하나가 외로이 있다. 눈발인지 꽃잎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흐드러진 매화 속 집의 휘장을 걷은 둥근 창 사이로 서책이 층층이 쌓여 있고, 책상 앞엔 한 선비가 앉아 있는 모습이 비친다. 선비의 책상 위에도 주둥이가 좁고 가는 술병에 매화 한 가지가 꽂혀 있다. 2월이면 생각나는 그림 우봉 조희룡(1789~1866)의 ‘매화서옥도’다.

‘매화가 흩날리는 숲속에 있는 책이 가득한 집’이란 뜻의 매화서옥도는 조선의 모든 매화 그림을 통틀어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조선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조선시대 화가였던 우봉 조희룡은 매화를 유난히 사랑했다. 그는 매화시가 새겨있는 벼루와 먹을 사용했고, 자신이 그린 매화병풍을 둘러치고 앉아 매화시를 읊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목이 마르면 매화차를 마셨다.

그는 힘들 때마다 매화를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하는데, 신안 임자도에서의 유배생활 3년 동안 그의 매화사랑은 더욱 커져 이후 평생을 매화에 빠져 그림을 그렸다고 전한다.

‘매화서옥도’는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삼고,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부렸다는 중국의 임포라는 사람의 고사를 묘사한 그림이다. 그러나 그림 속 책상 앞에 앉아 매화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바로 조희룡 자신이다.

중인 출신이었던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으나 추사는 조희룡을 못마땅히 여겼다. 사대부 출신이었던 추사는 조희룡의 가슴 속에 ‘문자향’이 없다며 그를 내쳤다고 한다. 1851년 추사의 심복으로 지목되어 임자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그는 양반들만이 그릴 수 있었던 금기의 소재 매화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싶은 열망을 담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화려하고 섬세하고 풍요로운 양식의 매화 그림은 파격적인 조희룡만의 예술세계였다. 18세기 간결함과 절제가 미학이었던 매화 그림의 전통은 조희룡에 의해 무너진다.



=임자도에 새롭게 태어난 매화

이번 설 연휴 신안 임자대교가 임시 개통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안 임자도 이흑암리는 조희룡의 유배지와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매화를 가까이서 접한 탓인지, 세상이 각박해진 탓인지 이 봄 조희룡의 매화와 함께 임자도가 유난히 생각난다. 지난 연말부터는 임자도 조희룡 미술관에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로 매화를 선보이고 있다니 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조희룡의 임자도 유배생활과 매화, 난, 대나무, 돌 등 작품 속 주제가 200여년의 세월을 넘어 ICT융복합 기술과 접목돼 새롭게 태어났다니 한번 발걸음을 해 볼 계획이다.

3월 중순이면 임자대교가 완전 개통된다. 이제 차로 3분이면 임자도에 닿을 수 있게 된다. 어둠과 절망의 끝에서 희망은 피어난다고 했다. 이 어둠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잊혀졌던 조희룡의 매화를 만나 코로나19 긴 터널 끝에서 만날 희망을 이야기 해 보자.

정치

사람들

경제

사회

기사 목록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