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5월, 공연을 앞두고 열심히 발레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 창피했다. 부끄러웠다. 계엄군에 끌려가 고생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외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광주시립발레단이 전한 ‘오월바람’이 광주의 상처를 달래고 어루만졌다. 조선대 무용과 학생으로 80년 5월을 직접 겪은 문병남 안무가의 지난 세월과 고민의 흔적은 무대 위에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광주시립발레단의 제128회 정기공연 ‘오월바람’이 지난 9~10일 두 차례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날 소극장은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기대와 열기로 가득했다. 발레단은 ‘발레로 승화된 80년 5월’, ‘광주를 대표할 문화 공연’이라는 호평에 걸맞은 무대를 선사했다.

총연출을 맡은 최태지 예술감독과 발레단은 지난 공연의 다양한 평가를 반영해 한 층 더 완성도 높은 공연을 준비했다. 5·18 광주의 신음을 담은 영상, 가슴에 젖어 드는 어머니의 편지 낭독, 촛불 진혼 등 추가된 장면들은 작품에 입체감을 더했다.

1979년 가을을 배경으로 펼쳐진 무대는 조선대 무용과 학생들의 공연 연습, 유신체제 붕괴, 비상계엄령 등 시대 상황을 실감 나게 보여줬다. 단원들은 대사 한마디 없이 표정과 몸짓만으로 관객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새겼다.

발레뿐만 아니라 캐릭터 설정과 줄거리 또한 흥미진진했다. 자유를 원했던 주인공 ‘혜연’과 ‘민우’, 반대세력인 ‘충환’과 ‘향미’는 각자 캐릭터의 특색을 담은 춤사위로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 강한 무대를 선보였다. 항쟁지도자, 무용과 학생들, 계엄군, 시민들을 표현한 단원들의 열연 또한 공연의 완성도를 높여줬다.

‘오월바람’ 공연 모습. /광주문예회관 제공

상징적 의미를 담은 장면들도 눈에 띄었다. 무용수들이 만들어낸 커다란 비둘기 한 마리의 날갯짓에 객석은 숙연해졌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평화의 바람을 담은 메시지였다.

캐릭터에 맞게 흑과 백으로 대비시킨 의상과 안무는 관객의 작품 이해를 쉽게 했다. 표정 없는 군인들의 통제된 움직임과 공격적인 동작은 당시 시민들을 억압하고 짓밟았던 신군부 세력을 연상케 했다.

순백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무용수들에게선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광주 시민들의 모습과 숭고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갈 때쯤 감정이 북받친 몇몇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객석 여기저기서 감격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한 관객은 “광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꼭 봤으면 하는 훌륭한 공연”이라며 “5·18을 주제로 한 다양한 공연 중 단연 최고였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80년 5월 광주를 살아간 사람들의 고뇌와 소망, 평범한 청춘의 사랑과 고통을 발레로 아름답게 그려낸 공연 ‘오월바람’. 단순한 창작발레를 넘어 민주화를 갈망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