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신안 저녁노을미술관

바다 위의 정원을 조성하고 있는 신안군에는 총 24개의 공공미술관 및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12개의 미술관이 완성됐고, 12곳이 추진 중이다.
신안군이 미술관에 주목한 이유는 예전의 문화소외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이유가 컸다. 군은 섬 마다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특색있는 미술관을 지어 섬 주민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관광객의 발걸음을 이끌어 문화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2023년까지 ‘1도 1뮤지엄’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 오는 2023년 신의도에 오픈할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미술관’은 지향점과 콘텐츠 구성에서 단연 눈길을 끈다. 신의도는 민중화가 홍성담 작가의 고향이다. 군은 2년에 걸쳐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미술관 건립을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해 최근 건축디자인을 확정했다.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미술관 건립의 콘텐츠를 마련할 레지던시 공간인 ‘문화예술공장’도 옛 신안보건소 자리에 마련하고 운영 중이다.

문화예술공장에는 최근 1년여간 제작한 작품 100여 점을 비롯해 200여점의 작품이 보관되고 있다. 이곳에서 제작된 작품이 오는 6월 27일까지 신안 저녁노을미술관에서 ‘하의도에서 오월까지’라는 이름으로 공개되고 있다. 전시는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미술관 건립 중간보고전 성격이다.

저녁노을미술관 전경.

◇저녁노을미술관 ‘하의도에서 오월까지’

12일 방문한 저녁노을미술관은 입구에 자리한 천사섬분재공원과 함께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서해로 지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지어진 이름답게 넓고 쾌적한 공간과 아름다운 풍광이 압권이었다.

문화예술공장에서 함께 작품을 제작해 온 홍성담, 박성우, 전정호, 전혜옥 작가가 지난 1년여 동안 제작한 ‘하의도 7.7항쟁도’와 ‘암태도 1923’ 대작을 홍성담 작가의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 현장과 인물에 대한 기초드로잉 200여 점도 함께 전시돼 있어 비교해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전시 작품들에는 유난히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오늘의 우리 역사를 만들어 온 주인공들이다. 1623년 하의 3도의 농민들이 바다의 땅을 간척하고 정명공주의 혼례에 따른 선물로 하사된 이후의 역사를 그림은 상세히 기록해 내고 있다.

‘하의도 7.7항쟁도’ 작품 하단에는 400년의 역사가 빼곡히 담겼다. 전통 실경산수를 그리는 박성우 작가의 실경과 전정호 작가의 ‘하의 3도 7.7항쟁’ 판화 연작이 회화적인 형식으로 스며들었다. 개간의 희망,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청춘남녀의 사랑, 섬에 사는 평범한 가족의 사소한 행복 같은 민중의 삶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담겨있다.
화면 상단에는 대동세상이 펼쳐진다. 장구 치고 꽹과리를 두드리며 신명에 몸을 맡긴 한바탕 춤에서 우리 민족의 농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암태도 1923’은 80년대 민중미술 걸개그림의 대표적 형식을 취한다. 화면을 위 아래로 3단계로 나눠 아래쪽에는 암태도 소작쟁의 과정을, 중간에는 역사적 사실과 지금도 유사한 우리 현실문제를 그렸다. 화면 상부에는 역사 속 주인공들의 죽음이 던진 의미와 승리의 환호가 그려져 있다.

두 작품에서 공통된 회화적 특징은 ‘색’이다. 80년대 걸개그림은 오방색을 활용해 강렬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선호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파스텔톤으로 채도를 낮춘 작품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신안의 바다와 자연풍광이 사실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고, 회화적 완성도가 충실하다.

홍성담 작가는 “민중미술의 형식을 바꿨다. 강압적이고 사의적이 아닌 보는 이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차분히 전달하려 한다. 걸개그림이 갖는 영웅적 중심 형상을 없애고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자세로 다가가려 채도를 낮추고 캔버스를 한지 쓰듯 다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됐던 광주시각매체연구회 소속 예술가들의 작품 ‘오월의 문, 윤상원의 눈’도 20년만에 감상할 수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처음으로 발표된 노래극 영혼결혼식의 주인공 윤상원과 박기순을 중심으로 광주민주항쟁 주역들이 총망라해 등장한다. 지난 10일 별세한 이애주씨의 춤사위도 화면 중앙에서 만난다.

20년만에 다시 선보이는 ‘광주 오월의 문, 윤상원의 눈’.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미술관 준비

오는 2023년까지 건립될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미술관은 신의면 하태동리 438번지 일원에 전시관을 비롯해 작가의 집, 폐교를 리모델링한 레지던시 등으로 들어선다.
미술관은 2018년 당초 홍성담미술관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그 해 12월 홍성담 작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미술관’으로 이름이 정해졌다.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라는 선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미술관이 출발한 데는 382년 동안 대를 이어 저항한 하의 3도 농민운동의 역사와 일제강점기 암태도 소작농들의 아픈 역사에서 유래한다.
서러운 역사의 땅에서 자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저항의 예술가들은 모두 남다른 인권과 평화에 대한 DNA를 간직하고 있다.

미술관 1층에는 어린이 그림도서관이 운영될 예정이다. 부모와 함께하는 어린이 인권·평화·교육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미술관 소장작품은 300여 점으로 출발한다. 홍성담 작가의 작품 100점이 기증된다. 아직은 다리가 연결되지 않은 곳이지만 미술관 개관 후 2026년께 다리가 개통될 예정이다.

동아시아인권과평화미술관 조감도.

한편 문화예술공장에서는 미술관이 완공되기까지 동아시아의 작은 섬 신안의 저항의 역사와 인권과 평화에 관한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홍성담 작가는 “앞으로의 작업은 장산도 만세운동과 홍어장수 문순득,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한국 현대사와 함께 그릴 계획이다. 신안의 아름다운 풍경 30경도 시리즈로 작업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미술관 개관 1년 전부터는 신의도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하는 미술작품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무명의 주민들의 그림이 전시되고, 주민들의 미술관으로 이용될 수 있게 아이덴티티를 찾으려고 한다. 신안 주민과 함께 연극하고 공연도 하는 등 섬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대중화 시키고픈 바람이다”고 홍 작가는 덧붙였다.

신안군 관계자는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미술관은 서남해의 서러운 섬의 역사를 잊지 않고 그 역사가 동아시아와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평화를 위한 가치를 만들어 가는 일에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연수 기자

암태면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