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은 시판되기 전 오랜 기간 동안 과학적 테스트, 임상시험 등을 거친다. 통상 15년 가량의 연구 및 시험이 필요하며, 1만여개의 신약 후보 물질 중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한두 개 정도라고 한다. 잘못 만든 약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에서도 신약과 같은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들이 지속적으로 연구돼 적용되고 있다. 교육발전을 위해서 당연히 새로운 방법들이 시도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존 방식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부정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겨 수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만약 그럴듯한 홍보와 분위기에 현혹돼 중요한 시기의 학생들을 비효과적으로 가르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생 주체 토론중심

우리는 사고력과 창의력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이 혁신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식 교육, 특히 구구법이나 단어암기 같은 주입식 교육은 더이상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새 시대의 교육, 즉 혁신교육에서는 교사의 가르침보다 학생의 배움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학생들을 다른 사람의 지식을 수용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흥미와 필요에 따라 지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성숙한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에 필요한 역량인 배려와 협동심,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토론과 프로젝트 방식으로 수업이 바뀌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교육 관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교육정책 측면에서 2000년부터 적용된 7차 교육과정과 함께 도입됐던 것이니 거의 20년 정도 지났다. 7차 교육과정은 영국의 1988년 교육과정 개정의 주요 내용을 수용해 적용한 것이다.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개별학습에서 팀별 프로젝트 등 학생활동 중심으로의 변화를 교육과정과 수업에 도입했다. 2010년부터는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자기주도적 배움 중심, 학생중심, 토론중심으로 교육을 바꾸고자 혁신학교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수업혁신 연수나 수업 선도교사들의 모델수업은 거의 새로운 방향으로 실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학교현장에서 혁신적인 수업개선 성과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고, 그것의 확대 과정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교사가 수업 주체로 남아 있다면, 그리고 학생이 주체가 되는 토론중심으로 수업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은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단지 수업방법만 바꿔도 쉽게 교육혁신과 교육발전을 이룰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교사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델로 삼았던 영국의 수업혁신 정책의 진행상황은 어떨까. 영국은 국가기관의 장학지도를 통해 수업혁신 정책을 추진했다. 1992년 설립된 교육표준청(OFSTED)은 강력한 권한을 인정받고 있는 장학지도 기관으로서 모든 학교의 수업을 참관하고 평가해 단위학교별 평가보고서를 발간한다. OFSTED는 수업 개선을 강력하게 추진해 교사의 수업지도보다는 학생의 배움 중심으로, 그리고 지식보다는 실생활 적용 중심으로 수업을 개선하고자 했다.

그러했던 OFSTED는 2013년 12월 23일 수업평가 방식을 크게 변경했다. 더이상 교사가 직접 가르치는 것을 학생중심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지도할 교과와 단원 특성에 따라, 대상 학생의 수준에 따라, 그리고 지도교사의 경험과 전문성에 따라 학생들이 더 잘 배울 수 있다면 수업방법 선택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 중심, 배움 중심, 그리고 미래 역량증진이라는 좋은 제목보다 수업 효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특정 수업방식을 강요하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했던 교원노조(NUT)는 이러한 변화를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초·중등학교 관리자협회(ASCL)는 이에 대해 ‘학생을 잘 가르치는 방법을 정치가가 아닌 학교가 결정해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기도 했다.

-교사 수업권 인정해야

이러한 영국의 학교교육 변화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 국제비교평가에서 급격한 학력향상을 보이고 있다. 급격하게 학력이 저하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수업정책 방향과 학력향상 추이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교사가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과내용에 대한 전문지식과 생활지도 전문성은 기본이고 수업방법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 여러 가지 새로운 수업방식들을 부단히 시도하면서 가장 효과를 많이 얻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확보해야 한다. 영국 OFSTED에서 실제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 자신이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부담 없이 활용하도록 교육정책 관점을 바꾼 것처럼 우리도 이제 교사가 자신 있게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