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이 온통 스산하다. 초겨울의 매찬 바람결을 이겨내지 못한 생명체들은 하나같이 동면을 서두르고 있다. 두어 해를 비워두어 바람이 숭숭한 시골 오두막. 여미고 다독이며 간신히 입주했다.

생장의 기미를 멈춘 뜰 안의 풍경은 보이는 곳마다 을씨년스럽고 썰렁하다. 도회지에서 끌고 온 것도 아니건만 회색빛 시멘트 담들이 동네 여기저기에서 시야를 어지럽혀서일까. 하루빨리 앞마당에 나무와 꽃들을 심고 가꿔서 삭막한 그 모습들을 가려버려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바삐 지냈다.

봄을 보내고 여름, 가을, 겨울을 차례대로 맞이하면서 그런 내 생각이 많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앞집의 뒷모습은 싸늘하지도, 흉하지도 않았다. 봄내 담 너머로 하얗고 순결한 배꽃과 자두꽃이 눈부시게 피어나더니, 여름에는 접시꽃과 해바라기가 정열을 토해냈고, 가을에는 주렁주렁 붉은 감들이 한나절씩 툇마루에 앉아있게 했다. 겨울 역시 빈 가지로 바람을 맞으며 새 떼들을 불러 모으는 나목들과 함께 해가 기울도록 사색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시간이 흘러갈수록 앞집, 아니 동네의 뒷모습들에 홀딱 빠져 틈만 나면 행복한 세월 놀이에 젖어 들었다. 바람 부는 날‘우우우…’ 흔들리는 대숲의 합창 소리는 한 편의 오페라 선율이 되어 온 마을에 메아리를 불러들인다. 그뿐이던가. 해질녘, 굴뚝에서 피워내는 하얀 연기가 붉은 노을을 따라 너울너울 산을 넘으면 현실인 듯, 꿈결인 듯 나도 따라 출렁거렸다.

아무 노력도 없이 덤으로 얻은 그 기쁨은 의식에 차츰 변화를 일으켰다. 앞마당 가꿀 생각에 뒷마당은 방치했던 것이 부끄러워 뒷집 담장 앞에도 관심을 가졌다. 개나리를 심어 병아리처럼 노란 꽃이 가득 피어나게 하고, 등나무 덩굴을 올려 보랏빛 등불을 황홀하게 밝히기도 했다. 창 앞에서 바라보면 자기 집 정원 같아 보기 좋다는 뒷집 안주인의 말을 들을 때마다 ‘뒤태가 참 고와요’ 하고 칭찬을 들은 것처럼이나 기분이 좋았다.

산으로 이어지는 뒤뜰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그곳은 자연과 위배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배려일 듯싶었다. 주로 야생초들을 가득 심어 풀인 듯 꽃인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그냥 두었다.

집뿐만이 아니다. 근래에는 내 자신의 뒷모습이 늘 궁금하다. 외출 준비를 한 후에도 “괜찮아요?”하고 남편에게 앞을 보이는 게 아니라 살포시 뒤돌아서는 습관이 생겼다. 은연중에 타인들의 뒷모습에도 관심이 많다. 눈여겨 살피다 보니 마음의 진실은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훨씬 정확하게 담긴다는 것을 알았다. 앞모습은 다양한 표정으로 속마음을 감출 수도 있지만, 뒷모습은 숨길 수 없는 솔직함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도….

오랫동안 헤어진 정인(情人)을 그려 볼 때 역시 왠지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먼저 떠오를 때가 많다. 늘 그리움 속에 있는 할머니만 해도 꿈에서 나타나시면 어딘가를 향해 황망하게 떠나시는 뒷모습이 잘 보인다. 그 여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영화 장면 또한 이별을 앞둔 연인들이나 생을 마지막으로 내려놓아야 하는 심각한 내용일수록 뒷모습을 조명해 주는 일이 많지 않던가. 뒷모습은 그만큼 그 사람을 정직하게 나타낸다는 의미이리라.

사찰에 들를 때마다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의 뒤쪽을 자주 바라본다.

‘후광….’

분명히 뒤에서 피어나지만 바라볼 수조차 없을 만큼 눈부신 아름다움. 부처님만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거룩하게 살다 간 성인(聖人)들에게서는 후광이 발한다. 뒷모습은 그렇게 일부러 가꾸기보다는 앞모습을 위해 곱게 살다 보면 덤으로 아름다워지는 듯싶다.

모든 이들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남게 되는 것은 현세에서 살아낸 자취이다. 그 자취는 후광이 발하듯 앞모습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라져 가는 뒷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