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오지현 기자] 목포 근대문화역사관, 포항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있다. 이는 바로 일제강점기에 나무로 지어진 일식 가옥이나 일본과 서양 양식이 결합된 ‘일양 절충식’ 가옥으로, ‘근대가옥’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가옥은 현재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로, 리모델링 등을 통해 상업적 공간으로 변화하며 그 의미는 점점 더 퇴색되고 있다.

그렇게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근대가옥이 광주 동구에서 ‘인문학당’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주인공은 70여 년 전 지어져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동명동의 고택, 일명 박옥수 가옥. 서양식 본채와 한옥식 안채, 건물 내부는 일본식으로 건축돼 한식, 양식, 일식이 혼재한 가옥 형태를 지닌 이 고택이 지난 7일 인문학당으로서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조성한 인문학당 내부 모습.

앞서 동구는 지난 2019년 4월 동명동 행정복지센터 신축 및 주차난 해소를 위해 이 가옥을 매입했다. 가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영주차장을 조성하려 한 것. 그러나 가옥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동구는 이를 허무는 대신 향후 시민들의 동아리 활동과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 각종 작품 전시 등이 진행되는 인문학당으로의 개보수를 추진하고 나섰다.

지난 16일 찾은 인문학당은 건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로 집을 채워나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인문학당 내 작품들은 기존 집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버린 물건들을 활용해 꾸며졌다. 샹들리에나 가구 등 버려진 물건들이 업사이클링을 통해 다시 새롭게 탄생한 것. 다기, 가구, 의자 등의 작품들 또한 서서 감상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직접 사용하고 만져볼 수 있도록 해 물건에 각자의 이야기와 경험을 담아낼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총 38명의 작가들이 만나 아카이브, 설치, 공예,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문학당을 채웠다. 이들은 별별기억, 별별정원, 별별마루, 별별다실, 별별부엌, 별별소통 등 6개의 테마로 인문학당을 구성했으며, 대부분의 영감을 가옥이 가진 역사와 이야기 속에서 얻었다.

별별기억은 거실과 다락방 공간을 활용해 가옥이 간직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작품을 전시하며, 정원은 마당을 배경으로 ‘쉼’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뒀다. 별별마루는 옛날식 복도인 마루를 다목적실로 변화켰으며, 별별다실에서는 다기를 통해 차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공유주방인 별별부엌에서는 다양한 쉐프들과의 콜라보를 통한 ‘오프닝 테이블’을 통해 지역과의 연계성을 기반으로 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별별소통은 인문학당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담아낸 기념품 및 디자인 제작과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7일 광주시 동구 동명동에 문을 연 ‘동구인문학당’의 옛날 가옥 모습.

그러나 인문학당은 그 무엇보다 조형물이나 벽화 등 도시 미화 및 관광의 목적으로만 활용되고 금세 그 빛을 잃어버린 공공미술의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지역의 특색과 가옥이 가진 의미를 학당 내부에 온전히 담아냄으로써 방문객들로 하여금 편하게 가옥 그 자체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한 지점에서 공공미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것 같기도 해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기도 한다.

구도심에서 떠오르는 상업지구이자 관광지로 떠오르며 다양한 이들이 방문하는 광주의 ‘핫 플레이스’가 된 동명동. 오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가옥에 많은 사람들의 서사가 쌓여 더 의미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