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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만 시골 군수의 ‘물러날 때’

2022. 02.22. 17:53:04

정근산 기획탐사부장

그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는 ‘역발상’이다. 그는 지난 2016년 4월 ‘곡성(哭聲)과 다른 곡성(谷城) 이야기’라는 글을 썼다. 그해 700만 관객을 불러모은 영화 ‘곡성(哭聲)’의 개봉을 앞두고 그는 “‘우려’를 뒤집어 생각하면 ‘기회’의 순간이 온다”고 했다. 지역 이름과 같은 범죄 스릴러 영화가 행여 ‘곡성(谷城)’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들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오히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실제 곡성을 찾아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초록잎의 발랄함과 갈맷빛 사철나무의 들뜨지 않는 엄정함에 감탄할 수 있다면 곡성에 올 자격이 충분하다”고 고향에 대한 애정과 사랑, 자신감을 대신했다.



◇곡성 변화 이끈 유근기 ‘리더십’

그의 글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화 개봉에 즈음해 열린 ‘곡성 세계장미축제’에는 23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며 축제 기록을 다시 썼다. 그해 4월 “곡성이 소란스럽다”로 운을 뗐던 그의 글은 5개월 뒤 “곡성은 흥분에 싸여 있었다”로 다시 시작해 “일상이 꼬여 편두통이 오면 섬진강으로 오시라. 곡성은 언제나 첫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로 맺으며 세간에 다시 읽혔다.

그의 아이디어는 톡톡 튀었고, 한발 빨랐다. 그는 지난 2015년 곡성의 오지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전국 처음으로 ‘효도택시’라 이름 붙여진 100원 택시를 도입했다. 산골마을 군민이 면 소재지로 나갈 때 100원만 내면 되는 수요 응답형 콜택시로, 현재 곡성군 47개 전체 마을에서 효도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곡성의 효도택시는 지난해 한달 2,194장씩 1년간 모두 2만6,328장의 이용권이 배부돼 2만5,117장(95%)이 사용되는 등 복지정책의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그가 2016년 1월 전남 최초로 도입한 ‘1,000원 버스’는 효도택시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곡성의 교통복지를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6년 곡성군 개청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기업 유치는 ‘인구 3만의 작은 시골’이라는 벽에 갇히지 않은 그의 도전의 결과물이다. 오는 5월이면 오산면 일원에 완공될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산업용 고압직류기기 성능시험센터’는 직·간접고용 1,000명과 2,000억원 이상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숙식과 휴양시설을 두루 갖춘 ‘코레일 곡성 인재개발원’은 한번에 최대 2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올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오곡면 일원에 인재개발원이 문을 열면 연간 2만2,000여명의 교육인원을 포함한 11만여명의 휴양객이 곡성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18년을 기점으로 그는 곡성의 백년대계에 천착했다. 지역이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곡성’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민관학을 한데 모은 미래교육재단을 설립, 긴 호흡의 교육정책과 시스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역 전체를 교육공동체로 묶어내는 ‘곡성형 교육 생태계’는 서울 학생들의 농촌유학 등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또 토란과 멜론, 백세미 등 3대 대표 농산물을 전국적 브랜드로 키워냈고, 기차마을과 장미공원이 전부나 다름없었던 관광자원을 압록유원지 상상스쿨, 섬진강 침실습지, 기차당 뚝방마켓 등으로 확장해 다시 오고 싶은 여행지를 만들었다. 그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인사·공사 비리,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품에 안은 선 굵은 정치력도 지난 8년 곡성을 지탱해 온 또 다른 힘이었다는 데 토를 다는 이는 많지 않다.



◇3선 불출마, 화두는 여전히 ‘곡성’

민선 6기와 7기, 곡성을 이끌며 가장 가슴 시린 장면이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2020년 수해로 인한 군민들의 절망과 2016년 늦은 퇴근길 생을 달리한 홍보팀 주무관의 안타까운 사고”라 했고, “백년대계 교육의 틀을 다진 일은 뿌듯함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리고 오는 7월 평범한 군민으로 돌아가 지역 발전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3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쉽지 않은 결단으로 정치 인생에 쉼표를 찍은 유근기 곡성군수의 화두는 여전히 곡성이며, 또 여전히 진행중이다.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그에 대한 볼멘소리가, 서운함을 토로하는 이가 왜 없겠는가. 괄목할 만한 성적표를 들이밀며 ‘한번 더’라는 달콤한 부추김도 적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더 새로운 리더십’을 위해 물러날 때를 아는, 여전히 ‘곡성을 앓는’ 유근기 군수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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