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세평>‘나는 한때’ ○○였다
김명화 교육학 박사·작가


비가 내린다. 울진, 삼척 산불이 열흘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반갑고 고마운 비다. 천금 같은 비가 내린다. 비야, 비야 내려라 노래를 부른다. 고맙고 알찬 봄비는 마음이 타들어가는 이재민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비가 오는 날 서점에서 지우 작가의 ‘나는 한때’ 라는 그림책을 발견하였다. 삶은 아동기, 청소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거친다. 인생은 장편의 기억보다는 단편의 기억들이 만나 삶이 채워진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현 시점에서 과거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간여행’ 어느 역에 있나

인생의 기차를 타고 가다 플랫폼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던 순간의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삶의 여행에서 가장 마음을 두었던 역은 어디쯤이었을까? 인생은 기차를 탄 시간여행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역을 지나고 있나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한때’ 그림책은 ‘당신의 한때는 어떠했나요?’, ‘기억속의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을 펼치면 ‘한 아이가 나는 한때 새싹이었고, 껌과 친구가 되기도 했고, 망아지였다가 커튼이 되기도 했어’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태어날 때 머리카락이 없는 아기, 껌을 씹고 자다 머리카락에 껌이 붙었던 어린 시절, 청소년은 다양한 컬러염색으로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월에 지남에 머리카락이 없어진 캐릭터는 늙어버린 자신을 만난다.

사회적 직함을 떼고 나면 “내가 한때는 말이야.” 사랑, 공부, 출세, 돈, 명예에 관련된 사연을 담아 자신의 한때를 늘어놓는다. 인간의 지나왔던 삶을 보면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했던 때가 있다. 인생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시절이 있는 것이다.

봄비가 내리니 부산한 마음을 내려놓고 친구와 우리의 한때를 전화로 수다를 떨었다. 20대 시절 친구들과 별것도 아닌 일에 에너지를 쏟았다. KBS 방송 시트콤 ‘도시의 천사들’ 프로그램에 나오는 임하룡은 쉰 옥수수, 밥풀떼기 김정식, 불광동의 휘발유 양종철 등 자신의 캐릭터에 붙여진 별명을 부르면서 사라진 조직의 세계를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만들어 참 재미있게 봤다.

도시의 천사들 프로그램을 보면서 벗들과 서로 별명을 부르기로 했다. 서울 잠실 은행에 근무한 친구는 잠실의 큰손,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다녔던 친구는 구의동에서 자취를 해서 구의동의 족발, 광주 용봉동에 사는 친구는 용봉동의 월남치마, 그때 난 중흥동의 불나비였다. 친구들과 만나면 “잠실에 큰손 떴다. 용봉동에 월남치마 나와라. 중흥동에 불나비 날았다.” 하면서 웃고 떠들며 허세를 부려가며 말장난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신은 한때 어떤 이름이었나요?’ 인생을 살면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현재의 삶이 힘들거나,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릴 때 가장 많이 웃고 즐거웠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삶에 뛰어들고픈 열정이 있었던 시절, 방황해도 아름답고 의미 없는 일에 앞만 보고 달렸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당신도 외로우신가요? 그 외로움에 사무칠 때 과거로 가고 싶은 시간은 어디쯤인가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시간여행을 하다보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난다. 삶의 한때를 떠올리면서 자신과 공감해 보는 추억여행은 치유의 시간이다.

누구나 한때가 있다. 울 엄마도 한때는 새싹이었고, 울 아빠도 한때는 꿈 많은 소년이었으며, 울 할머니도 한때는 수줍은 새색시였으며 울 할아버지도 한때는 잘나가는 그 누구였다. 우리는 누구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삶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서로 신뢰 회복했으면

‘한때 나는 여러 가지 이름이었어.’ 자신의 한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나왔던 과거의 삶을 통해 내가 꿈꾸던 시절을 생각해 보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역을 지나고 있을까?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계절은 봄이지만 남도의 분위기는 쌀쌀하다. 결과는 아프지만 치열했던 모두의 노력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이제 물이 스며들 듯 서서히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며 살아가야 한다.

봄비가 내린다. 영화 ‘내부자들’ 이병헌이 차를 몰고 가며 부르던 봄비 노래가 오버랩 된다. ‘봄 비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비가 오는 봄날, 나는 한때 누구였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한때’ 촛불 시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