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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火)
탁현수 수필가·문학박사

2022. 04.27. 18:14:08

그날의 불은 정녕 허상이었을까. 어른들 모두 눈빛으로만 끄덕이며 묻어버린 은밀한 기억 속의 일. 건너 뜸 ‘애단’ 언니가 이웃에 사는 친척 오빠와 눈이 맞았다는 괴이한 소문이 나돌았다. 온 동네에 알 수 없는 기류가 극에 달할 즈음, 언니는 머리를 깎였다고도 하고,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고도 했다. 어둑한 골방에 갇혀 긴 겨울을 보낸 애단 언니는 급기야 헤실헤실 실성하고 말았다.

시샘 많은 봄바람이 앞산 진달래를 앞세우고 골방 창문을 흔들어 대던 날, 언니는 깔깔거리며 집에 불을 질렀다. 바삭바삭 마른 초가지붕은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어버렸다. 온 세상이라도 삼켜버릴 듯 날름거리는 불길은 어린 가슴에 각인이 될 만큼 무섭기만 했다.

정월 대보름날엔 어른들의 불조심 당부에도 아랑곳없이 우리 조무래기들은 신바람이 나서 논둑, 밭둑에 불을 질렀다. 미친 듯이 자꾸자꾸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불의 정열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설렘과 통쾌함을 주었다. 불은 이미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만은 결코 아니었다.

집안일을 제법 거들 수 있었던 시절, 자청해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을 즐겼다. 부지깽이 하나로 마음대로 불을 다룰 수 있음이 좋았고, 붉은색도 노란색도 아닌 신묘한 상념의 색채에 흠뻑 사로잡혔다. 불꽃들은 아슴아슴한 추억들까지도 빛 고운 그리움으로 피어나게 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은 좀 더 정제된 불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그 무렵부터였을까. 저녁마다 집안에 호롱불을 켜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 아슴푸레 땅거미가 내려오면 등(燈)에 불을 밝혀 처마에 거는 일로 산골 마을의 밤은 시작되었다. 나는 그 불빛이 아주 먼 곳까지 전해지길 바라곤 했다.

불은 천의 마법사였다. 할아버지께서 늘 품고 계셨던 화롯불은 긴 겨울밤 군고구마와 군밤의 보급처였고, 다리미와 인두를 달궈주는 어머니의 바느질 보조자였으며, 일터에서는 시린 손을 데워주는 등 늘 따스함과 인정이 솟는 곳이었다.

고향을 두고 도회지에서 생활하면서부터 눈부시게 빛나는 여러 밝은 불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불빛을 따라 성취의 불, 정열의 불, 사랑의 불, 경쟁의 불들이 순서도 없이 찾아들어 자꾸만 마음을 흔들어 댔다. 요동을 치기도 하고, 쾌재를 부르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때로는 폭죽과 같은 섬광이고도 싶었다가, 가끔은 성당 제단 위의 촛불이 되어 하얀 무명베 같은 삶을 기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고향의 불들은 따스한 숨결로 가슴속에 피어올라 순연한 푯대가 되어 토닥토닥 평정을 심어주곤 했다.

어느덧 내 마음의 불은 젊은 날에 끓어오르던 열정의 불꽃은 이미 아니다. 온기를 나누던 할아버지의 화롯불 불씨가 살아 오르기를, 캄캄한 밤길을 비춰주던 처마 밑 호롱불이 가늣하게라도 켜져 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하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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