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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면
최원현 수필가·문학평론가·㈔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2022. 05.04. 16:44:11

5월이어서일까. 하늘빛 물빛이 달라졌다. 겨우내 조금은 검다싶던 물빛이 3월 4월을 지나면서 맑아지는 것 같더니 5월이 되자 푸른 산그리메며 초록 이파리 색에 물이라도 들었음인지 맑은 푸른 빛이다.

하늘도 그렇다. 회색빛에 가깝던 것이 점점점점 맑아져 오월이 되니 가을만큼은 아니라도 청명 하늘이다. 산야가 푸르고 하늘과 물빛까지 푸르러진 5월이라서인지 사람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밝아진 것 같다. 실외에선 마스크도 벗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들어있는 가정의 달 5월, 하지만 내겐 서러운 추억의 달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카네이션을 접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빨간색으로 부모님이 안 계시면 하얀색으로 카네이션을 만들라셨다.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다 빨간색 색종이를 접고 오리기에 바쁘다. 한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순간 까닭 모를 부끄러움에 나도 몰래 고개가 숙여지고 눈물이 그렁해졌다. 책상 밑 손끝에서 하얀 색종이가 접어졌다. 그날 나만 하얀 카네이션을 만들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신 것이 내 탓은 아니건만 내 탓 같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신 것이 그날따라 그리도 부끄러웠다. 아무 기억조차 없는 아버지, 기억에도 떠오르지 않는 어머니, 돌 달에 가신 아버지와 세 살 때 가신 어머니는 내게 하얀 카네이션으로 아픈 가슴 서러운 추억만 만들게 해 주었다.

해마다 5월이면 난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그러나 한 번도 부치지 못한 편지다. 결혼 후 편지쓰기도 그만두었다. 가신 어머니는 가신 어머니일 뿐 그리움도 세월이 가면 흐려지고 옅어질 터였다. 그러나 나는 아주 몹쓸 병에 걸린 것처럼 그리움 병에서 좀체 헤어나질 못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자라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낳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머니는 가슴에서 좀처럼 사라지지도 지워지지도 않고 더 큰 공간으로 채워지잖는 빈방을 만들었다. 유일한 사진 한 장과 어쩌면 기억일 수도 있을 작은 한 조각이 어머니의 모습을 구체화 시켜 새로운 기억으로 자리하는 이상한 현상까지 만들었다.

어느 해인가. 어머니 산소엘 갔더니 은방울꽃이 피어있었다. 순간 어머니가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어 그렇게 피어난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신 지가 70년인 지금인 데도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순간순간 그리움의 물꼬를 트고 내 가슴을 자란자란 흘러간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눈부시게 하얀 꽃상여가 있었던 것 같다. 스물아홉의 나이로 가신 어머니, 너무 젊은 나이에 가는 것이라 흰 꽃상여였던가. 내가 못 보게 하느라 작은이모의 등에 업혀 뒷마당에 있었는데 나보다 열세 살밖에 많지 않은 열여섯 이모였으니 앞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궁금했겠는가. 살며시 뒤란에서 나와 집 모퉁이에 몸을 숨기며 상여가 나가는 광경을 보았던 것 같고 나는 업힌 이모의 등 뒤에서 그 광경을 보았을 수 있다. 세 살짜리의 기억이 오죽하랴만 내 기억 속엔 그게 너무나도 크게 자리해 버려 여직 그걸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오월이다. 그 어린 것의 눈에 비쳤던 하얀 꽃상여만큼이나 서럽고 안타까운 하얀 카네이션 만들기와 해마다 오월이면 어머니께 쓰던 내 부치지 못한 편지의 기억은 종심(從心)을 넘겨버린 내 가슴과 눈부처에서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다 못 자란 것인가. 오월이면 여전히 그리운 어머니, 올해는 거실 밖 송화(松花)가 그리움의 향기로 어머니 소식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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