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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된 민들레
김한호 문학박사·수필가·문학평론가

2022. 05.11. 14:27:30

예전에 교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선생님이 학생을 ‘잡초’라고 꾸중했다고 자살을 했다. 말썽을 부리던 여학생을 지도하면서 선생님이 실언을 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잡초처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세상을 떠났다. 선생님도 학교를 떠났다.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는 교정에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선생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학생들이 울고 있었다.

새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조그만 빈터에 꽃밭을 만들었다. 수선화, 접시꽃, 달맞이꽃, 분꽃, 벌개미취 등 다양한 꽃을 심었다. 게다가 민들레 씨앗을 뿌렸더니 다른 꽃들 틈새에서 노오란 꽃들이 별처럼 피어났다. 북유럽을 여행할 때 덴마크 옛 성터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서양민들레가 우리 아파트 작은 꽃밭에서 재현되는 듯 아름다웠다.

민들레는 세계적으로 400여 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민들레, 흰민들레, 털민들레, 산민들레, 좀민들레 등 10여 종이 자생한다. ‘민들레 홀씨 되어’라는 노랫말이 있는데, 민들레는 홀씨(포자)가 아니라 씨앗으로 번식한다. 토종민들레는 봄에만 꽃을 피우며 일편단심 토종민들레 하고만 꽃가루받이를 한다. 그러나 서양민들레는 봄에서 가을까지 꽃을 피우면서 몇 번이고 씨앗을 퍼뜨리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번식력이 강한 식물이다.

새싹이 움트는 봄에 꽃밭과 길섶 여기저기에서 서양민들레가 피어났다. 어느 날 아파트 단지에서 풀을 매는 아주머니들이 꽃밭에 피어 있는 서양민들레를 뽑아버렸다. 다음날 그분들에게 “왜 민들레를 다 뽑아버렸느냐”고 항의하니, “민들레는 잡초”라고 했다. 그들에게 ‘민들레는 꽃이 아니라 잡초’였던 셈이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 또는 빈터에서 자라며 쓸모없거나 농경지에 심은 작물 옆에 자라서 방해가 되는 식물을 말한다. 그러나 잡초도 알고 보면 제각기 쓸모가 있으며, 대부분 약용식물이 많다. 서양민들레의 종속명 ‘officinale’은 라틴어로 ‘약용’이란 뜻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인디언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잡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잡초처럼 여기는 서양민들레는 귀화식물이다. 귀화식물은 ‘자연 상태로 국내에 적응된 외래식물’을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귀화식물은 110여 종으로 아무 데서나 잘 자라며 번식력이 강하다. 그런데 귀화식물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제거해야 할 잡초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나 오염된 땅에서 토종식물이 사라져버린 생태계에 식물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식물은 생명력이 강한 잡초뿐이다.

전쟁이나 방사능 오염은 인간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이 죽어가며 오래도록 피해를 준다. 소련의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으로 자연환경이 오염되었는데, 이러한 폐허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생명체가 잡초였다. 2차 세계대전 때 런던이 독일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었을 때, 포탄으로 황폐화된 땅에서 꽃을 피운 식물은 폭탄잡초라는 분홍바늘꽃이었다. 민들레는 잡초처럼 생존력이 강해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 전쟁 중에 사람들의 식량이 되기도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아름답게 피는 서양민들레는 약용식물이면서 생태계 복원식물이며 구황식물인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도 서양민들레는 귀화식물이라는 차별 때문에 제거해야 할 잡초로 취급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러한 까닭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하지만 쓸모없는 잡초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생존하는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존재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자신을 잡초라고 나무랐다고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한 소녀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은 민들레처럼 잡초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들레는 ‘밤하늘의 별들이 떨어져 땅위에 꽃이 되었다’는 전설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이다. 하늘의 별이 민들레꽃이 되었듯이, 그녀도 잡초 같은 민들레처럼 생명을 소중하게 여겼더라면 꽃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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