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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밭에서
탁현수 수필가·문학박사

2022. 05.25. 17:34:20

헤살헤살 손짓하는 바람 탓이었으리라. 과밀하게 솟은 새순이라도 좀 쳐줄까 싶어 전지가위를 들고 감나무밭으로 나왔다. 옆집 아저씨로부터 일장 연설을 들었건만 정작 나무 앞에만 서면 갈팡질팡 헤맨다.

어린 감나무가 심어진 조그마한 밭쯤이야 문제없이 가꿀 수 있노라고 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치 분재로 착각할 정도로 공들여 키워놓은 주변 과수원을 볼 때마다 그만 주눅이 들고 만다. 건장한 병사들이 열병식을 하듯 질서 정연하게 서 있는 과목들 사이에서 우리 밭은 웃자라고, 비틀리고 기우뚱기우뚱 꼴이 말이 아니다. 반듯한 남의 자식들 속에 못나기 그지없는 내 자식을 끼어놓은 것만 같아 고개까지 절로 숙어진다.

마냥 부럽게만 보아왔던 옆 과원을 오늘은 마음먹고 요리조리 둘러보았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들이 아니었다. 마치 나무 로봇들의 전시장에라도 온 듯하다. 다듬고, 휘고, 늘려서 빚은 인간의 수공품이라고나 할까. 자유롭게 숨을 쉬며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단지 열매가 매달리기 좋게 일률적으로 복제해 놓은.

농민들의 생계가 달려있고, 튼실한 과일을 풍요롭게 생산해 내는 일이 과목들의 역할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도 모르게 죽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요즈음 우리 아이들의 힘겨운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은 왜일까. 속성으로 키우기 위해 화학 비료를 듬뿍 주고, 면역이 생길 틈도 주지 않고 농약을 치고, 개성을 창출하기 위해 삐죽삐죽 옆길로 나오는 가지들은 미련 없이 잘라내어 주인의 의도 대로 키워지는 과목들이나, 어른들이 정해놓은 사회적 성공이라는 틀에 맞추어 그곳만을 향해 마냥 뛰게 하는 현실의 교육이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요즈음 초등학생들만 해도 작은 어른을 보는 것처럼 성숙하고, 기능적으로도 여러 방면에 달인의 경지가 된 아이들이 많다. 어른과 달인…. 그것은 세월과 경험이 내면으로 쌓이고 쌓이며 생긴 나무의 나이테요, 삶이 그려낸 진솔한 그림이 아니겠는가. 단시간의 훈련이나 흉내로 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갑자기 하얀 파도 자락을 몰고 오는 바람 소리와 함께 울릉도 해변 기암괴석 사이에 서 있는 해송(海松) 한 그루의 자태가 사실인 듯 눈 앞에 펼쳐진다. 비뚤비뚤 올라가다 태양을 향해 송엽(松葉)을 부채꼴로 활짝 펼친 모습은 가히 신이 주신 걸작품이다. 일부 사람들이 분재라는 이름으로 그 해송의 모습을 흉내 내고들 있지만, 모양새야 그렇다 하더라도 태양과 바람과 바다의 이야기들을 온몸으로 속살대는 그 청정한 정기는 어찌한단 말인가. 옛 선인들은 뜰 안의 매화 한 그루도 되도록 살쪄 있지 않으면서 가지마다 독특한 개성과 세월의 흔적이 가득 얹혀 있는 나무를 상품(上品)으로 쳤다. 눈 부신 햇살 아래 하늘하늘 춤을 추는 감나무 가지들을 바라보면서 손에 들려있던 전지가위를 차마 놓아버렸다.

청청한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오월의 들녘, 초록은 점점 윤기를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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