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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돈 줍기
김한호 문학박사·수필가·문학평론가

2022. 06.01. 17:31:08

그날은 허탕이었다. 술이 취한 박호 아버지가 변소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박아! 니 아부지 똥 좀 누라 해라.”

“멍충아! 어찌 쌩똥을 싸라고 하냐?”

우리들은 부질없는 일을 기대한 것이 계면쩍어 그냥 들녘으로 달렸다.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가고 있었다. 풋보리를 한 움큼 쥐어뜯어 손으로 비벼 먹다 맛이 없으면 보리깜부기를 향해 던졌다. 거무튀튀한 깜부기 가루가 보리밭 위로 흩날렸다.

보릿고개라서 다들 점심을 먹지 못해 뱃속에서 쪼르륵 쪼르륵 하는 배고픈 소리가 창자를 타고 들려왔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6·25전쟁 뒤끝이라 늘상 배고팠기 때문이다.

별명이 호박이라는 동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이 박호였는데, 우리들은 거꾸로 호박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콧물이 질질 흐르는 얼굴로 욕을 한 바가지나 해댔다.

박호 아버지가 술이 취해 돈으로 똥구멍을 닦았다는 소문이 났다. 그 당시에는 화장지가 없어 신문지나 지푸라기로 뒤처리를 했다. 그런데 박호 아버지가 아무리 술이 취했다고 해도 그 귀한 돈을 종이로 착각했는지, 아니면 더러운 돈을 똥같이 취급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종이돈으로 똥을 닦았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6·25전쟁 때 한 팔을 잃은 박호 아버지가 술이 취해 신세타령을 하는 날이면, 우리들은 해우소 주변에 서성거리고 있다가 똥을 누고 나오자마자 구린내가 코를 찌르는 똥통에서 재빨리 똥돈을 건져 올려야 했다. 아직 그 똥돈을 보지 못했지만 재밌고 호기심이 가는 일이라 똥돈을 줍기 위해 동무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날 저녁은 유난히 날씨가 어두웠다. 심부름을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박호 아버지가 측간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번뜻 똥돈 생각이 났다. 그래서 박호네 집 통시를 더듬거리며 똥통을 찾았다. 똥통은 잿더미가 쌓인 두엄 옆에 널빤지 두 개만 얹혀 있었다. 밤눈이 어두워 징검다리 건너듯 조심조심 다가갔다.

갑자기 동네 똥개 짖는 소리에 놀라 발을 헛디뎌 똥통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몸 전체가 빠지진 않았지만 이만저만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럽고 구린내 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동무들이 알면 큰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컴컴해질 때까지 뒷간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도랑물로 몸을 씻었다. 더럽고 구린내 나는 똥돈에 눈이 어두워 쓸데없이 욕심을 부린 것이 후회스러웠다.

박호가 거시기, 머시기 동무들과 다투고 있었다.

“똥통에 빠진 거시기 니는, 주은 돈을 안 주면 울 아부지한테 일러분다.”

거시기가 억울하다는 듯이 대든다.

“거시기, 니 말 하면 쥑인다.”

옆에 있던 머시기가 윽박지르니 거시기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섰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똥통에 빠진 게 아니라 여러 동무들도 똥통에 빠졌다는 걸 알았다. 더구나 그 돈은 똥통에서 건져 올린 게 아니라, 술이 취한 박호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머시기가 슬쩍 한 것을 똥통에서 주웠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쩌다 돈을 줍는 꿈을 꾼다. 그런 날이면 복권을 샀다. 그러나 허탕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나에게도 행운이 올 거라고 기대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기회는 결코 오지 않았다. 세상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가끔 잊고 살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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