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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넘쳤던’ 지방선거 13일의 고흥

2022. 06.07. 18:29:18

정근산 기획탐사부장

며칠 전 막을 내린 6·1 지방선거에서 전남은 58.4%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4년 전 7회 지방선거(69.2%)와 비교하면 10.8%포인트 낮은 수치지만, 그럼에도 전국 최고를 찍었다. 전남 22개 시군 중에서는 고흥이 77.8%라는 압도적 투표율로 전국 최고를 견인했다. 전남, 그중에서도 고흥의 높은 투표율의 이유는 뭘까.



◇후보 명함은 ‘식권’ 혼탁의 끝

무소속 현직 군수와 4년 전 고배를 마신 더불어민주당 후보 간 리턴매치. 1년 전 보궐선거에서 맞붙었던 무소속 도의원 후보와 민주당 후보 간 재대결. 여기에 다수의 무소속 후보들과 민주당 간 대진표가 짜인 군의원 선거까지. 기초의원부터 단체장까지 치열하게 맞붙은 대결구도는 투표율을 끌어올렸고, 진영 간 세대결도 그만큼 치열했다. 필자가 취재 등을 위해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5월 19일부터 31일 자정까지 13일간 고흥 현지에서 지켜본 모습도 그랬다. 말 그대로 사투였다. 아니 그보다 더 정확히는 지방선거, 특히 군 단위 시골 선거에서 보여줄 수 있는 낯 뜨거운 구태의 모든 것이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설욕을 위해 표밭을 누빈 민주당 후보와 현직 프리미엄을 앞세워 재선을 노린 현직 간 리턴매치가 치러진 군수 선거전을 보자. 인구소멸 등 직면한 지역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과 공약은 언감생심. 그저 ‘민주당’을 외치는 후보와 운동원, ‘한번 더’를 소리치는 유세차량 행렬이 전부였다. 그나마 반짝했던 양측의 대결도 현 군수 재임 기간 수의계약 몰아주기, 재산 증식 등을 둔 공세와 이에 맞서 허위사실 공표와 후보비방 혐의로 이어진 검찰 고발 등 질 낮은 네거티브로 채워졌다. 전남도의원 선거는 8회째를 맞는 지방선거가 무색하게 여전히 존재 자체를 모르는 주민들이 태반이었고, 군의원 선거는 후보자들의 파렴치한 전과들이 넘쳐났지만 이 역시 개의치 않았다.

고흥 지방선거의 진면목은 해가 진 뒤다.

전국 최대 산지인 마늘작업과 모내기, 특산품인 다시마 생산 등 1년 중 가장 바쁜 농번기임에도 날이 어둑해지면 고흥 행정의 중심 고흥읍과 경제의 중심인 녹동읍 식당가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지방선거 관련 모임이 아닌 개인 단위 손님은 아예 받지 않을 정도.

많게는 100여명에 이르는 열두 띠 갑계 모임은 하루가 멀다하고 열렸고, 마을별 노인회, 청년회, 수산인회, 농업인회, 부녀회 등 붙일 수 있는 이름의 친목 행사는 13일의 선거 기간을 꼬박 채웠다. 오죽하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밥자리, 술자리가 지겹다는 주민들이 속출했을까. 모임을 주관하는 이가 내민 후보자의 명함이 ‘식권’으로 불리고, 사람이 아닌 표가 모인 식당가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후보자와 운동원들로 인해 문턱이 닳을 정도였으니 그 정도가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터. 모처럼의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애써 모른척 하는 선관위 등의 통 큰 인심은 감시의 눈을 아랑곳 않는 후보자들의 ‘밥 선거, 술 선거’를 부추겼고, 시골의 기이한 선거풍토를 처음 접한 도시의 귀농·귀촌인들은 연신 “이게 무슨 일이냐”를 되뇌었다.



◇그들만의 4년이 되지 않기를

고흥 16개 읍면 소재지와 주민 수가 많은 주요 마을은 거나한 밥자리, 술자리가 파한 뒤에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돈 봉투 살포를 잡기 위한 각 후보자 진영의 운동원들이 주요 길목을 지켜 선 채 차량 번호를 적거나 대조하는 모습들이 새벽녘까지 이어졌고, 후보자가 탄 소위 ‘1호차’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웃픈 풍경도 반복됐다. 그만큼 각 후보자와 캠프의 날이 서고 신경이 곧추서는 ‘돈 선거’가 판을 쳤다는 반증. 마을 이장이 대신 찍어 보내는 거소투표와 승합차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차량을 끌어와 표를 실어 나르는 사전투표의 관행은 차라리 애교 수준으로, 누구는 얼마를 썼고 또 누구는 얼마를 베팅했다는 풍문들이 넘쳐났다.

그렇게 뜨거웠던, 아니 ‘젖과 꿀이 넘쳤던’ 고흥의 지방선거는 끝이 났다. 승자와 패자가 갈렸고 희비도 엇갈렸다. 새로 군수가 뽑혔고, 새로운 도의원과 군의원도 선출됐다. 그렇게 민선 7기가 저물고 민선 8기 시작을 앞두고 있다. 허나 걱정이 앞선다. 앞으로 4년이 그간 뿌려댄 ‘식권’들을 되찾고, 새벽녘까지 길목을 지킨 이들의 주머니만을 채워주는 4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저 바랄 뿐. 필자의 걱정이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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