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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최원현 수필가·문학평론가·㈔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2022. 06.08. 18:29:44

전화가 왔다. 아내가 사고를 당했단다. 자전거로 운동을 나갔나 본데 돌아오는 길에 넘어지면서 오른쪽 다리가 네 군데나 골절되된 것이다. 이번 달엔 아내도 나도 중요한 일들이 많은데 당장 입원하고 수술을 받아야 하니 모든 일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아내만 병원에 있는 것이 아닐 테니 내 모든 일정 또한 올 스톱 될 것이다.

당당하게 계획표 속에 들어있는 내일부터의 꽉 차 있는 이번 달 내 모든 일정을 다 어찌해야 하는가. 그러고 보니 내 시간이란 당초에 없었다. 신의 시간을 빌려 쓰는 주제에 그걸 마치 내 것인 양 조정하고 바꾸면서 시건방을 떨었다.

50대의 세계적인 배우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작가가 세상을 달리했다. 뿐아니라 내로라하는 이들의 부고를 보면서 일을 당한 가족과 친지들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여 살아있음에 대한 경이로움이 더욱 가슴 가득 밀려온다. 그렇게 생명도 시간도 내 것일 수 없는데 어찌 내 계획을 세우며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 순간만 그나마 내 시간이라 할 수 있을 뿐 다가올 시간도 계획도 예정도 내 것이란 없다. 하니 겸손하게 이 순간에만 최선을 다하면서 감사할 일이다.

난 50살까지만 살겠다고 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다 서른 전에 돌아가셨으니 50이면 부모님보다 엄청 많이 사는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50이 가까워지자 불안해졌다. 오십은 금방이었다. 그렇게 오십인가 했는데 어느새 거기서도 20년이 지나 종심(從心)의 나이도 넘어버렸다. 보내신 이가 당장 부른대도 그저 감사해야 할 나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주 오래 살 것처럼 생각하고 미래의 계획도 세우려 한다. 신이 보시면 참으로 가당찮고 한심하고 괘씸해 보이기도 하리라.

아내는 참 건강했다. 나는 아파서 여러 번 입원도 하고 수술도 받았지만 아내는 아프지도 않았고 그러니 한 번도 수술이나 입원도 없었다. 어쩌면 교만할 만큼 건강에 자신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병으로가 아니라 다쳐서 입원을 하고 수술까지 받은 것이다. 더구나 큰일들을 앞두고 말이다. 제발 까불지 말고 겸손하라는 신의 경고일 것만 같다. 아내에게만 주는 경고이기보단 내게도 주는 경고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가 이렇게 있는 것도 기적이고 축복이다. 내일 아니 한 시간 후도 내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오직 이 순간만이 그나마 내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라는 찬양곡이 있다. 오늘도 제대로 못 살면서 내일을 또 달라는 것 같아 더 염치가 없어진다. 나에게 하루하루가 신의 선물이요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한 시도 결코 허투루 살 수가 없을 테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또 새 아침을 기다리며 내일도 내 시간일 것이란 건방진 믿음을 갖는다. 그게 사람이고 나다. 어쩌면 그 내일을 모르기에 그나마 편안히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곳간을 더 짓겠다는 부자에게 “오늘 밤 네 생명을 거두리라”던 성서의 말씀이 아내의 사고를 보는 내 마음을 종소리가 되어 깨운다. 제발 오늘이나 잘 살라는 신의 음성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신비롭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축복이다. 내일이 오늘이 되는 건 가장 큰 기적이다. 그러고 보면 아내가 이만큼만 그리고 다리를 다친 것도 기적이고 축복이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이 오늘이고 지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내일이라지만 사람은 오늘만 산다. 오늘만이 가장 중요한 현재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은 그렇게 내일이 오늘로 와줄 것을 믿으며 산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로 내일이 오늘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이 오늘이 되면 내게 들려온 신의 목소리인 아내의 치료부터 더 열심히 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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