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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나를 바꾸는 혁명

2022. 06.12. 17:27:05

<열린세상> 나를 바꾸는 혁명
정진탄 월간국장 겸 논설위원


박노해 시인은 최신작 ‘너의 하늘을 보아’란 시집에서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은 너의 하늘을 보아”라고 속삭인다. 독자마다 느끼는 맛은 천차만별일 테지만 필자가 보기에 박 시인은 구도자의 길을 벗어나 이제는 깨달은 자 쪽에 가깝다. 일명 사노맹 사건으로 사형을 구형 받았던 박 시인이었다. 혁명을 꿈꾼 청년에서 영혼의 시인 또는 언어의 가객이 됐다.

그의 시어 중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 등은 거짓 자아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짜 자신으로 살아갈 것을 권고하는 뜻으로 읽힌다. 개체적 에고를 떠나 너의 안에 있는 어떤 절대성을 보라는 뜻으로 필자는 받아들인다. 이쯤 되면 한때 혁명가 또는 극좌파였던 박 시인의 대반전이다. 영혼과 절대성(쉽게 말해 하나님)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사회운동가 속성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이다.

박노해 시인 대변신 의미

어떤 경지에 이르면 시어로 메시지를 전한다고 한다. 한국 근대사의 위대한 선승으로 일컬어지는 경허스님은 말년에 시로 삼라만상을 풀어내고 암시했다. 이슬람 신비주의 종교인 루미도 시어로 삶과 영혼을 축약했다. 영성가들이 언어적 논리를 바탕으로 긴 글을 잘 쓰지 않는 이유는 필연적으로 언어적 왜곡과 의도치 않은 정신적 장애물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승이 깨달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손가락 하나를 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박 시인과 같이 대변신을 꾀한 사회과학자가 종종 있다. 586그룹으로 대단한 좌파 이론가였던 A씨는 현재 서울 모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불교에 심취해 있다. 정통파 칼 맑스주의에서 사회주의 붕괴 이후 니체 계열의 프랑스 철학을 섭렵하더니 이제는 불교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인류 지혜의 스승 붓다를 배우고 이를 후학에 전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우리 삶의 궁극적 지향점에 대한 모색이다. 박 시인 같은 지식인들이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진보의 시대에 영혼의 갈급함을 지적하고 이를 시어 등으로 충전시키고 있다. 혁명적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박 시인, 좌파 투쟁 이론을 쥐락펴락했던 A교수가 이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들과 당대를 같이하고 투쟁한 사람들의 다른 삶의 여정도 있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586그룹은 악마적 좌우 진영대결과 극한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 586 퇴장론이 거세지만 권력에 취한 나머지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상당기간 586그룹은 퇴장하지 않을 것 같다. 이들은 공정을 부르짖는 청년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고 있다. 헌데 박 시인 같은 지식인은 우리 사회에 분노, 좌절하는 청년에게 삶의 의지와 영혼을 불어넣고 있다. 이 무슨 조화인가.

낡은 이데올로기에서 못 벗어났거나 사리사욕으로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키는 586그룹은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언젠가는 정치 무대에서 사라진다. 권력욕, 즉 에고의 극대화도 한때의 시절 인연일 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인식론적으로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정말 못 말리는 것이다. 뭐 눈에는 뭐밖에 안 보인다는 말이 맞다. 예를 들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목사 조엘 오스틴의 설교는 아주 유쾌하며 영혼의 울림을 주는데, 그의 설교 내용이 자본주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란 혹평이 있다. 사회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보면 일면 그렇게 볼 수 있는 점이 있다. 그의 설교 내용은 주로 개인 삶의 의지를 북돋워주기에 궁극적으로 맞서 싸워야 할 자본가, 기업가들의 이익에 복무케 한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소리다. 자본가와 기업가들이 오스틴 목사의 사랑과 영혼의 설교에 감동한 나머지 사회봉사에 적극 나서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비판은 전체적인 오스틴 목사의 설교 본질을 모르고서 세속적인 이데올로기 시선에서 가하는 단견일 뿐이다.

현실 정치는 이데올로기와 개체적 에고의 확장 싸움인줄 알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역사가 망가진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사실 이런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과 러시아, 바이든과 푸틴의 대결은 우크라이나 한 국가를 무너뜨리고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진정 세상 변화시키는 힘

범위를 좁혀 우리 사회 또한 극한 대치를 보이는 정치투쟁은 흡사 해방 전후의 좌우 진영대결을 방불케 할 정도다. 더욱 범위를 좁혀 광주를 보면 평온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뜨거운 정치적 마그마가 들끓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30%대의 최저 투표율이 이를 웅변하고 있는데, 엄청난 대변화를 바라고 있다. 이제 민주당도 싫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또한 지역민에게 던져져야 할 물음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너의 하늘을 보아’의 박 시인 삶으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바꾸려했던 혁명가 박 시인은 결국 제 자신을 완전히 바꿈으로써 진정 우리에게 세상을 바꾸는 힘을 퍼뜨리고 있다. 이에 동의하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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