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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질
박덕은 문학박사·화가·전 전남대 교수

2022. 06.15. 17:43:03

다림질을 하려는데 꽃무늬 셔츠의 단추가 떨어져 있다. 단추를 달려고 반짇고리를 연다. 잡식성의 바늘은 단추를 먹어 치우며 안과 밖을 잇는다. 바늘은 뜯어지는 속성을 나무라듯 짱짱하게 매듭을 짓는다. 꽃무늬 셔츠에 물을 뿌린다. 옷장에서 오래 묵힌 탓에 꽃들은 목이 칼칼했는지 순식간에 물을 빨아들인다. 소맷부리와 어깨 쪽에 각을 잡은 후 다림질한다. 겨드랑이 쪽을 간질이듯 다리미로 밀고 당기자 웃음을 참아내느라 보푸라기들이 납작하게 엎드린다. 소매에 칼주름을 잡기 위해 조심스럽게 꾹꾹 눌러 다리는데 이중으로 주름이 잡힌다. 이중 주름은 두 개의 고집이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듯 날을 세우고 있다. 저 두 개의 고집처럼 날 선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도 광주역 앞 오거리는 교통이 번잡했다. 신호 대기 중에 파란불이 켜져 출발하려는데 순간 멈칫했다. 우측 길의 차가 신호가 바뀌는 바람에 어정쩡하게 멈춰 서 버린 탓이었다. 차선 진입을 방해하는 그 차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창문을 열고 끝이 뾰족한 바늘의 말투처럼 날카로운 육두문자를 사정없이 쏟아부었다. 헝클어지며 꼬인 말의 표정들이 직설적으로 날아갔다. 한 번 실밥이 터진 감정은 시간의 올이 풀릴수록 신경질적이 되었다. 그때 하필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운전을 방해하는 놈에겐 가운뎃손가락만 들어올려 모욕을 주곤 하지. 싸움 나기 전에 각자의 길을 가니까 안전한 방법이지.”

화가 난 나는 진입을 방해하는 그 운전자가 볼 수 있도록, 손바닥을 내 쪽으로 향한 채 가운뎃손가락만 쑤욱 들어올렸다.

발바닥까지 화끈거리게 화내는 다리미처럼 성을 냈다. 이를 본 운전자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튀어나왔다. 다행히 조수석에서 뛰어나온 사람이 야구 방망이를 다급히 뺏으려고 했다. 나는 들어올린 가운뎃손가락을 내리고 싶었지만, 내릴 수도 없어 심장이 벌렁거렸다.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가운뎃손가락을 그대로 꼿꼿이 세운 채 뻐대고 있었다. 깁거나 수선할 수 없는 감정의 허세에 갇혀 나는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그 사이에 오거리의 신호등은 바뀌었지만, 야구 방망이를 빼앗겼다 다시 되찾는 실랑이는 계속 되었다. 교통이 마비된 오거리는 함부로 찢긴 옷처럼 난장판이 되었다. 각을 잡아 반듯하게 다림질할 수 없는 고성이 여기저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때 차 뒷자석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걸어나오더니, 그 험악한 운전자를 팔짱 낀 채 차로 데려갔다.

소매의 이중 주름 위로 물을 흠뻑 뿌린다. 그날 내가 들어올렸던 가운뎃손가락처럼 뻣뻣한 주름이 물에 젖는다. 그날의 날이 선 고집을 내려놓은 듯 물기 머금고 있다. 꽃무늬 셔츠를 다린다. 감정의 허세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지난날을 다린다. 꼬깃꼬깃 구김 많은 마음을 다린다. 다린다는 것은 구겨진 기억을 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 소매 끝에서 주름지며 이울어 가는 꽃잎이 다시 화사하게 피어난다.

비 내림 끝의 눅눅한 한낮을 다림질하려는 걸까, 오후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댄스 풍의 노래로 다리고 있는지 창밖의 나뭇잎은 발랄하게 반질반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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