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지역
문화
스포츠
기획
특집
오피니언
사람들
전매광장
화요세평
열린세상
데스크칼럼
사설
에세이

<전매광장>정치보복과 ‘법대로’의 경계선

2022. 06.22. 17:22:55

<전매광장>정치보복과 ‘법대로’의 경계선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자마자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사람을 보내 ‘국내에서 편하게 살라고’ 했다.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1980년 자신을 사형시키려 했던 전두환을 용서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1973년 동경에서 자신을 납치하여 바다에 수장시키려 한 사람을 용서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 역사는 자신을 죽이려 한 정적을 용서한 대통령도 배출했고, 수평적 정권교체도 이루었으며,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도 진입했다.

용서·화해 철학 계승 못해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정치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 철학을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을 수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죽음으로 항의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여야 간 경쟁을 죽기살기식으로 격화시켰다. 또 정치권을 넘어서 진영 간 대립으로 확대시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도 이런 분위기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 때 이명박 정부와 검찰은 ‘법대로’를 강조했고, 민주진영은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시간이 흘러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사와 구속을 당할 때도 문재인 정부와 검찰은 ‘법대로’를 강조했고 야당은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상반된 주장에서 보듯 정치보복과 ‘법대로’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이런 사건이 거듭될수록 정쟁은 심화하고 국론 분열은 깊어졌다.

2022년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중 패배한 사람은 선거 후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대선은 승자독식의 게임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 모두 항상 치열했고 살벌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선거 과정에서 패한 쪽은 감옥에 갈 것이라는 수준의 험한 말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2022년 대선은 선거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미움과 증오의 전쟁.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가량 지났다. 검찰과 경찰은 각각 대장동 사건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사용사건 수사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경찰도 총대를 멨다. 검찰 타도만을 외쳐온 민주당으로서는 허를 찔린 셈이다. 이번 수사를 놓고도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정치보복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윤석열 정부는 ‘법대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재명 후보와 김혜경 씨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양쪽의 해석 중 어느 것이 맞고 그르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상기시키고 싶은 게 있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대통령이 퇴임 후 수사를 받고 구속된 사례는 있었지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사람과 그 가족이 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수사받고 구속된 사례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 험한 정치 역정 속에서도 그랬다.

또 ‘나쁜 선례’ 만들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기간에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했고 멀리 신안군 하의도까지 갔다 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와 통합 정신을 본받겠다고 했다. 또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노무현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윤 대통령이 노무현 영화를 보고 울었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그가 검찰의 부당한 수사와 탄압에도 분노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선 기간에 쓴 어느 글에서 필자는 선거 후 어느 쪽에 의해서든 또다시 정치보복에 준하는 사법행위가 발생하면 우리 사회는 폭발해버릴지 모른다고 썼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정치보복과 ‘법대로’의 경계선 논쟁은 무의미하다. 윤석열 정부와 검찰·경찰이 뭐라고 말하든 국민의 반쪽은 이재명 의원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게 둘 중 하나의 선택권이 주어졌다. ‘법대로’를 강조하며 나쁜 선례를 만드는 것과, 용서·화해와 국민통합이라는 좋은 선례를 따르는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지 국민과 역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정치

사람들

경제

사회

기사 목록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