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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를 보며
최원현 수필가·문학평론가·㈔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2022. 07.06. 17:51:05

참 오랜만이다. 얼마 만인가. 손바닥 모양의 가장자리가 톱날 같은 잎을 씩씩하게 뻗고있다.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올 것이고 그 꽃대 끝에선 꽃이 피어날 것이다. 목화(木花)다. 너무 오랜만에 보니 반가움에 눈물이 날 것 같다. 목화는 여러 색의 꽃을 피우는데 이건 무슨 색 꽃으로 필까. 꽃자리에선 앙증맞게 다래가 열릴 것이고 그게 또 이내 커져서 딱딱해지다가 삭과(朔果)로 벌어지면 구름송이 같은 솜을 뿜어내리라. 8,9월에 핀 꽃 자리에서 맺힌 다래가 예닐곱 날쯤 자라면 우린 다래 서리를 나갔다. 그때를 놓치면 따도 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우리가 목화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주 조심스레 먹을 다래 몇 개씩만 골라 땄다. 무엇보다 먹음직스런 크기를 보지만 만져봐서 딱딱한 느낌이 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여린 감촉이 느껴져야만 속살을 먹을 수 있다. 크기가 제법 크면서 연한 자색의 톱날 같은 잎에 싸여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린 날엔 먹을 것이 귀했다. 봄이면 삐비, 싱가, 생키, 감꽃 등 뭐든 다 먹었다. 그래도 늘 배는 고팠다. 하기야 배불리 먹을 것도 없었지만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나이인데 먹는 게 늘 부실하니 더 껄껄거렸을 것이다. 보리깜부기도 따 먹었고 밀서리도 하고 그러다보니 그 시절의 추억은 오히려 만물상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엾고 불쌍한 때였지만 아련한 그리움 가득 감사한 것들도 많다. 정서적으로는 요즘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풍성했다.

문학관으로 들어서려는 내게 옆 텃밭에서 반갑게 인사를 해온 목화, 어떻게 그게 눈에 띄었을까. 다른 이들은 아예 관심도 없다. 하기야 젊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 든 세대도 만난 적 없으면 모를 터였다. 그래도 ‘ㅈ’선생이 나처럼 반가워해서 함께 목화 곁으로 다가갔다. 아직 꽃이 필 때가 멀었으니 다래도 없다. 아기 손바닥 만한 작은 이파리가 귀여워 내 손을 갖다 대보았다. 한데 턱없이 큰 내 손에 순간 왈칵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만지면 안 될 것이라도 된 듯 깜짝 놀라 손을 떼고는 눈으로만 조심조심 살펴봤다. 한두 달 있으면 꽃대도 줄기도 튼실해질 것이다. 그러면 거기 꽃봉이 맺히고 이내 꽃이 피리라. 목화의 꽃은 흰색도 노란색도 붉은색도 다 이쁘다. 색깔마다 독특한 운치가 있다. 마치 노랑 하양 빨강 나비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다. 한없이 여려 보이는 것이 더 순결하고 청순해 보인다. 하나쯤 피어나 꽃을 보는 반가움을 더했음싶은데 내가 너무 일찍 와버린 것이다. 꽃도 꽃이지만 그 여린 말랑한 느낌의 다래를 만져보고 맛보고도 싶다. 아마도 다래의 속살을 입에 넣어도 그때의 맛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내 입맛은 자연의 것 아닌 것들에 수없이 길들여졌을 테니 얼마나 거칠고 둔해졌겠는가.

세월만큼 세상도 많이 변했다지만 어쩌면 나만 변했을 지도 모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래 맛은 그 맛일텐데 내 입맛이 그것을 배반할 것 같다. 언젠가 아이와 아카시아꽃을 따먹은 적이 있다. 그걸 손에만 들고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아이의 눈길에 내가 더 당황 했었다.

목화는 세 번을 핀다. 꽃으로 피고 다래가 삭과가 되어 품는 솜꽃으로 또 피고 그리고 우리네 이부자리나 옷감의 따스함과 포근함으로 피어난다. 할머니는 막내이모가 시집을 가자 목화 농사를 끊었다. 그 후로는 씨받이로 몇 그루만 심었다. 그래도 그 몇 송이 따낸 목화솜을 모아놓으시던 기억이 난다. 이곳의 목화도 제 몫을 기대하며 심은 게 아니라 눈요기감일 것이다. 본연의 목적을 잃었다 해도 내게는 그리움의 꽃이다. 다래 하나를 까 목에 넣었을 때의 달큰함처럼 울컥 그리움이 목줄을 타고 올라온다. 꽃이 피고 다래가 열릴 때쯤 다시 와야겠다. 운 좋으면 다래 하나쯤 맛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움의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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