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넥타이가 안 어울리는 도시
정진탄 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위원


터틀넥과 청바지는 스티브 잡스의 대표적 드레스코드로 그가 애플 신상품을 소개할 때 자주 등장했다. 여타 IT 거물 또는 CEO도 신상품 런칭 또는 미디어 인터뷰 등에서 비슷한 차림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드레스코드는 편안한 차림으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생명으로 하는 기업인, 전문인에게 권장된다. 딱딱하고 거추장스러운, 화려한 복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우리 사회도 자유스러운 출퇴근 복장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정도가 됐다. 창조성과 역동성을 중시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 발맞추거나 선봉에 선 유수 기업이 직원들에게 편안한 옷차림을 권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청바지 같은 스타일을 허용한다. 다소 포멀한 복장이 요구되는 공무원의 경우에도 반정장 정도로 드레스코드가 완화됐다. 한마디로 남자는 넥타이 매는 게 필수가 아닌 시대다.

창조적 분위기와 거리감

그렇다고 넥타이를 아주 안 매는 것은 아니어서 도심에서 종종 정장차림의 샐러리맨 무리가 눈에 띈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경우다. 광역도시 광주 도심에서는 거의 넥타이 착용자를 볼 수 없다. 특히 요즘 같이 폭염이 이어지는 날에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넥타이를 매고 거리를 활보하면 행인의 시선을 받곤 한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인데 넥타이를 매고…’ 이런 속삭임의 눈빛을 마주한다.

그럼 무더위가 오기 전 봄바람이 불었을 때 광주 도심에서 넥타이 차림의 샐러리맨을 구경할 수 있었느냐 하면 노(NO)다. 곧 청명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창조적인 아이디어, 자유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해서일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노타이’ 복장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광주가 여타 광역도시보다 비즈니스가 잘 돌아가는 산업·정보화의 도시가 아니라는 데 인식을 같이할 것이다. 광주는 넥타이를 매고 호기롭게 돌아다닐 만한 물적 토대가 풍부하게 갖춰진 도시가 아니다. 광주가 도시로서의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말하자면 관련 리스트가 아주 길 것이지만 뭉뚱그리자면 역사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를 받아온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5·18민주화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질곡의 세월을 말하지 않고서 지금의 광주 실상을 운위할 수 없다.

역대 정권과 정부가 호남, 특히 광주의 아픈 곳을 충분히 보상했어야 했다. 쉽게 말하자면 정부 예산을 퍼주다시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남인들로부터 역차별이란 소리를 들어도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호남은 그래도 정권 창출의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 호남에게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이후 치러진 6·1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주당을 향한 분노와 냉담함, 강력한 회초리는 미래 호남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호남인이 앞으로 어떻게, 누구를 지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광주 또는 호남은 윤석열 정부로부터 장차 어떤 대접을 받을지 모르지만 몸부림을 해야 할 것이다. 광주와 전남의 각종 현안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는 국비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만큼 백방으로 뛰어야 한다. 더욱이 지난 세월 채워지지 않은 발전 지체의 간극을 메울 생각이라면 숨이 막힐 정도로 움직여야 하는데 과연 지자체와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그렇게 할 의지와 열정이 있는가.

광주에 넥타이 샐러리맨들이 활보하지 않는 이유는 언급한대로 그럴 만한 도시 기반과 잘 나가는 청년세대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광주의 도시 세련화 과정이 긴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매우 효과적이고 신속히 할 수 있는 대표 사업이 인공지능(AI)과 광주형 일자리, 기업 유치 등이다. 미래 밥줄과 도시 문화가 여기서 파생된다고 할 정도로 지대한 지역 전략산업이다. 이런 전략산업과 연결되는 서비스 산업의 연장이 특급호텔과 복합쇼핑몰 유치이며 마이스(MICE)·관광산업 활성화란 것을 거의 모두 인식하고 있다.

‘광주 세련화’ 주체 누구

이 같은 산업과 사업이 탄력을 얻게 되면 넥타이를 매는 비즈니스맨, 젠틀맨이 거리 풍경을 바꿀 것이다. 물론 창조적인 기업과 아이디어맨이 많아져 ‘노타이’ 차림이 여전히 유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도시가 세련화 과정을 겪은 이후이므로 질적으로 비교 양상이 다르다. 쉽게 말해 지금 노타이는 물적 기반이 부족해서이고 미래 노타이는 풍요로워져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넥타이 하나로 광주 도시 이미지와 발전 정도를 묘사하는 것이 침소봉대일 수 있으나, 또 어떻게 보면 광주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후진성을 드러내는 급소가 될 수 있다. 미래 광주 발전을 이끌고 넥타이 샐러리맨들을 생산해낼 주체는 누구이며 어느 기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