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광주향교에서 두어 차례 특강 요청을 받았었다. 화순 주자묘(朱子廟)에서 강의 또한 몇 번 가졌었다. ‘역사 광복’을 꿈꾸는 필자에게 유학계의 접근은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급기야는 이번 광주향교 추기석전(秋期釋奠)이라 불리는 가을 제사에서 종헌관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아 영광스럽게 수행도 했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서 대한민국 향교개혁의 미래를 떠올렸다. 영문학이 전공인 필자에게 인문학 분야의 연마는 근본이 동일하여 설사 관심이 바뀐다 해도 활 틀에서 화살 몇 개 바꾸는 정도쯤이었다. 요컨대 고구려 태학, 백제의 박사, 신라의 대학같이 유교 이념 제도는 그 연원이 먼 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향교는 우리 역사와 운명을 함께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말 안향에 의해 성리학이 소개되어 조선조에 와서는 전국의 군, 현에 고루 설치됐다. 국가의 인재를 기르는 중심이념이며 공립교육기관이 향교였다. 향교가 지닌 기능은 크게 두 가지인 바, 유교 예절과 경전을 배우는 교육 기능과 공자를 제사 지내는 제향 기능이다.

이번 추기석전은 음력 8월 중 좋은 날에 올리는 가을 제사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향교는 서원에 밀렸었고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도입되면서는 제향 기능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의의를 갖는 데도 향교는 사회적 이슈에 가려져 있었다. 제향의 자리에서 초헌관에는 시장이 아헌관에는 중량급 시의원이 모셔진다 해도 시민과 학생들은 관심 밖의 일로 치러지는 게 현실이다. 언론에 잠깐 보도된 것이 그나마도 관심된 부분이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얼마 전 유교의 총 본산인 성균관에서 추석상에 ‘전’을 부치지 말라고 발표했었다. 추석 차례상에는 여섯 가지면 충분하다고 했다. 명절만 되면 명절증후군을 앓던 주부들이 그간의 세월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때문일까. 향교의 큰 행사이긴 해도 제사상은 너무 과하게 차려지고 의식 또한 현대의 흐름에 맞지 않게 절차가 길다. 향교의 의미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에서만 감 놔라 배 놔라 하다 보니 불요한 예법에 더 집착하지 않았나 싶다. 세상은 자꾸 변해가는 데 주자가례를 다시 소환할 수도 없고 곧이곧대로의 관혼상제는 이처럼 먹혀들지 않는다.

조선은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양반들은 체면치레나 과시욕에 편승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허례허식을 중시하였다.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 사과가 동쪽이니, 배가 서쪽이냐로 날밤을 새웠다. 그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공리공론의 구체적 사례였다. 향교의 제사음식이 과하다는 것이 이런 점에서 지적받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향교는 우리 민족의 고유성을 계속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민족과 함께 시민과 함께 시대를 따라가는 일이고 그 방법은 ‘향교축제’에 있다. 요즘 별의별 세상에는 축제가 있고 성공사례 또한 많다. 가까운 함평나비축제가 환경보호에 대한 놀라운 효과를 기록한다. 명량대첩축제, 남도음식축제, 장흥물축제, 광주충장축제 등등이 사람을 불러들인다. 사람이 모여들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그중에서 대전 중구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성씨축제’는 압권이다. 2박 3일 열리는 이 축제에 대한민국 문중 핵심 지도자들은 아니 갈 수가 없다. 해당 성씨 깃발이 입장하고 이어지는 성씨 자랑이 발표되는 자리에 깃발만 있고 사람이 없으면 문중 체면은 어찌 되겠는가. 이런 이유로 성씨축제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모여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축제이다.

전국에는 234개의 향교가 있다. 이 향교를 묶어서 ‘대한민국 향교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해당 지역의 깃발을 입장시키고 선의의 경쟁을 시키는 것이다. 이런 행사를 하려면 ‘대한민국 유교 대공원’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 적지로 화순이 떠오른다. 화순은 세 곳의 향교에다 주자묘가 있는 곳이다. 향교가 셋이나 되는 지역은 화순이 유일하다. 다른 지자체에서 이런 발상에 무관심할 때 화순이 선점했으면 한다. 유교권 국가들이 목하 약진 중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이나 싱가포르, 최근 중국 성장 등은 일등 국가이면서 공통적으로 유교 전통을 바탕에 깔고 있다.

우리만의 문화를 장양하는 길은 가장 한국다운 것을 찾아서 보듬어야 한다. 한국은 한글과 한류, 한국제품 등이 두루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면면히 흐르는 유교 정신이 오늘의 우리를 떠받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