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이 묻는다 “다시 살아도 될까요”
특별기고

빈집이 묻는다 “다시 살아도 될까요”

‘빈집은 자원’ 인식 전환 필요
‘전남형 빈집은행’ 등 서둘러야
■윤명희 전남도의회 경제관광문화위원장

군데군데 흉물스럽게 방치된 빈집. 나빠진 주거환경을 못 견디고 떠나는 주민. 그리고 또다시 늘어나는 빈집. 요즘 주변에서 자주 목격되는 광경이다.

저출생·고령화 등에 따른 인구감소, 경기침체로 인한 부동산 거래 부진, 복잡한 법적 절차에 따른 재건축 지연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많은 수의 빈집이 양산되고 있고, 그 규모는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1년 이상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주택 수는 2024년 기준 13만4018호에 달한다. 특히 전체 빈집의 42.7%인 5만7223호가 89개 인구감소지역에 소재하고 있으며, 전남에는 시도 중 가장 많은 2만5호의 빈집이 위치해 있다.

빈집은 단순히 방치된 공간이 아니다. 범죄, 화재, 붕괴 등의 안전사고는 물론, 도시 미관 훼손과 공동체 기능 약화 등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사소한 것들을 방치하면 더 큰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빈집 문제는 소극적 대응으로 해결할 수 없다.

비슷한 문제를 먼저 겪은 해외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며 지역 재생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왔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빈집을 예술가와 청년 창업자에게 저렴하게 제공해 쇠퇴한 도시를 문화지구로 탈바꿈시켰고, 일본은 ‘아키야 뱅크(Akiya Bank)’라는 공공 플랫폼을 통해 빈집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리모델링 보조금과 같은 실질적 지원 제공으로 이주와 지역 재생을 유도했다. 이러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빈집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행정의 적절한 개입과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는 빈집 문제 대응을 위해 시군구에서 맡아왔던 빈집 관리 책무의 국가와 시도로의 확대, 관련 세부담 완화, 플랫폼 고도화를 통한 관리현황 및 거래매물 정보 제공 등 4대 전략 15개 추진과제를 담은 ‘범정부 빈집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늦었지만 빈집 관리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정책 추진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가 종합계획에서 밝혔듯 효과적인 빈집 관리를 위해서는 정부·시도·시군구가 함께 연계한 체계적인 업무 시스템의 구축과 지역 여건을 고려한 특화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특히, 인구감소지역과 빈집이 가장 많이 위치한 우리 지역은 전남도가 주도하는 차별화된 정책 발굴의 필요성이 그 어느 지역보다 크다.

‘빈집은 자원’이라는 인식 전환을 통해 자연·역사·문화 등 우리 지역만의 비교우위 자원, 여유있는 삶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의 변화 등을 정책 설계 시 반영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든 해외사례와 같이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활용 가능한 빈집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금번 발표한 종합계획에 빈집 매물 공개, 빈집 예측·분석 시스템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플랫폼 고도화 과제를 반영한 바 있으나, 여기에 더해 리모델링 가능 여부, 주변 인프라 정보 등 보다 세밀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전남형 빈집은행’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민간 부동산 플랫폼과 연계한다면 활용도는 극대화될 것이다.

또한 빈집을 카페, 공방, 게스트하우스, 공유주택으로 리모델링해 성과를 거둔 여러 사례들을 참고해 우리 지역의 전통문화·관광 콘텐츠·특산물 등을 결합시켜, 원주민과 귀촌인이 함께 창업과 거주를 동시에 영위하는 새로운 빈집 활용 모델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아울러 빈집 문제는 하나의 부서 또는 기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점을 감안, 실태조사·정보수·자문·창업연계·민간협약 등 종합적인 행정 기능을 수행하는 ‘빈집지원센터’를 설립해 현장 중심의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빈집 문제는 단순한 공간 관리 차원의 영역을 넘어 ‘전남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지금이야말로 전남이 ‘소멸의 시간표’를 ‘재생의 시간표’로 바꿀 골든타임이다.

지금, 전남의 빈집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곳에 다시 사람이 살아도 될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시작해야 할 일이다.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