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광주 대전환의 조건
정진탄 논설위원

까칠한 광주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자, 현자는 누구일까. 이렇게 바꾸기 위해 무엇을 충족해야 하는가를 자문할 때가 있다. 역사적으로 중앙정부의 전국 발전전략에서 광주가 크게 소외됐다고 하는 것은 다 아는 바, 이를 털고 자가발전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단체장 또는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하면 이후 공약사업은 다 이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리 쟁탈전을 벌이기 전에 굳은 결의를 보였던 자태는 어디로 사라지는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심리다. 자리를 떡하니 앉아보니 그전엔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일들이 꽤나 어렵더라는 것인지 속 시원히 밝히지도 않는다. 시민, 지역구 거주자들이 알아서 이해해주는 것, 속된 말로 선거 장사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약속한 바를 처음부터 이행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배짱 비슷한 것이다.

선출직 당선 전후 다른 모습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려서보면, 그러니까 시민, 지역구민들이 갖는 문제도 없지 않다. 선출직이 공약사항이나 정책을 이행하는데 태만하면, 또는 신규 발전 사업을 개척하는데 창조성이 없으면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하나 침묵해버리는 것이다. 시민, 지역구민들도 선출직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특히 트러블을 일으키는 사업을 일부러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무심하면 발전 동력은 날아간다.

이런 얘기는 사회심리학적 접근에 기반한 무형의 담론이므로 구체성을 띠는 형태로 얘기를 전환해보자. 시민적 욕구가 강했지만 다수의 침묵으로 억눌려 있었을 때 어느 날 대선공약이란 외생변수로 인해, 즉 고급 쇼핑시설이 거친 광주 땅에 들어선다고 했을 때 시민들의 리액션은 어땠는가. 크게 환영하지 않았는가. 어등산에 호화 리조트가 위용을 보이고 무등산에 케이블카가 미끄러지듯 오가면, 다시 말해 전체적으로 지역사회에 전에 없던 문명의 물결이 일면 어떤 도시상이 그려지는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최근 충장축제를 개최했을 당시 80만 명이란 구름인파가 몰린 것은 단지 추억의 축제여서만이 아니다. 이전에 없던 대대적인 도심 불꽃 및 드론쇼, 버스킹월드컵, 대학 밴드 등의 다채로운 행사 및 공연이 펼쳐져 시민사회의 억눌린 갈망과 욕구를 해소시켜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 충분조건이 있었기에 신구세대 조화, 남녀노소, 내외국인이 함께 어우러진 글로벌 축제 부상 가능성을 본 것이다.

심리적 욕구가 구체적인 변화를 추동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떤 변수, 계기에 의해 물질적인 대변화가 일어나면 그에 맞는 심리적 움직임이 출렁이기 마련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광주 발전, 대전환이란 방정식에 적용하면, 그러니까 대규모 쇼핑몰, 첨단 케이블카, 호화 리조트 등이 시민들의 시야에 들어오면 억압된 심리적 기제가 확 풀리며 활력이 돌 것이다. 뿐인가. 신규 사업으로 시청 앞 새로운 문예광장 조성, 국제정치포럼 개최 등을 통 크게 추진해간다면 일대 부흥기를 맞을 수 있다.

요는 선출직의 의지이고 시민적 관심인데 양자가 의기투합해간다면, 흔히 말하듯 줄탁동시를 실현하면 차원이 다른 발전상을 만들 수 있다. 쇼핑시설 입구에 설치된 무빙워크를 타고 걸어가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전진해가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선출직이 원하는 자리에서 분수에 맞지 않게 안분지족하고 어려운 일을 마다할 경우, 시민 반응이 뜨뜻미지근하거나 비판에 둔감하면 발전은 급격히 시들해진다.

현재 돌아가는 광주 상황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것이나 과거에 없던 문화·편익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향한 기대감은 대부분 공유할 것이다. 전방 및 일신방직 부지 개발로 인한 도심 랜드마크, 옛 신양파크호텔 활용 등이 기다리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의 개통과 군 공항 이전 문제도 결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빠른 결실을 보고자 한다면 시민들은 이전과 다른 높은 관심과 참여의식을 가져야 하고 행정 당국은 느슨해선 안 된다.

지혜로운 리더, 깨어 있는 시민

그런데 상황은 항상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현상 유지, 그러니까 광주를 이대로 놔두자고 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광주가 이대로 현상 유지를 해간다면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에 대해 시민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자기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득권 세력은 선출직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관료와 지식인 등 지역 엘리트가 될 수도 있다. 얼토당토않게 구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못 버린 정치인 또는 시민사회단체 소속 인물일 수도 있다. 지역 언론사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광주란 지역사회가 전례 없이 바뀌기 위해서는 무수한 난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는 게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직 다음으로 시장직이 어려운 자리란 웃픈(웃기고 슬픈) 얘기가 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둑이 무너져 내리 듯 광주 땅에 단단히 박혀 있던 사회문화적 장벽이 넘어지면 이전에 없던 양상이 분출할 것이다. 광주가 대전환을 이루는 과정인데, 이를 불러일으키기까지 고통은 필수불가결하리라. 그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지혜 있는 지도자와 깨어 있는 시민이 아쉬운 것이다. 광주의 새로운 물결은 그냥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