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2년간의 군 생활을 뒤로하고 지난 2015년 10월 육군 상사로 만기 전역했다. 현재 초등학교 시설관리관으로 7년째 근무하며 제2의 인생을 지내고 있다.

나의 군 생활을 회상하자면 인고(忍苦)의 시간이었다. 나이는 들어갔지만 계급은 그대로였기에 나보다 먼저 진급한 후배들에게 경례하고 존칭어를 써야 했다. 진급 시즌이 되면 군에서, 가정에서 눈치를 봐야 했다. 후배는 진급해 주임원사가 되어 다니는데 나는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소총을 들고 병사들을 통솔하며 함께 야전 천막에서 뒹굴며 철야 훈련을 해야 했다.

나와 같이 진급 못 한 나이 많은 상사들은 일찌감치 명예퇴직을 하거나 전역을 선택했다. 나처럼 끝까지 만기 전역한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내 인생에 오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밑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고의 세월은 사회라는 직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자신을 갖게 만들어 줬다.

먼저 전역한 선배로서 이제 전역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감히 몇 가지 조언을 해 보고자 한다.

첫째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나는 일찌감치 사회 진출을 대비하여 시간 날 때마다 자격증 준비를 하였고 현재 8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제대군인들은 전역을 앞두고 다급한 나머지 아무 자격증이나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자격증 취득도 꼭 필요한 것만 해야지 남들이 한다고 마냥 따라서 자격증을 취득해도 마땅히 사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시간 낭비, 돈 낭비하지 말고 자기에게 꼭 필요한 자격증이 무엇인가 생각한 후 취득하기 바란다.

둘째 전역 후 직장에서 근무할 때 성실하고 친절한 태도로 근무해야 한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친절도 하나의 평가 기준이 된다.

나는 현재의 직장에 면접을 볼 때 행정실장이 전 근무지로 연락해 나의 근무 상태 등을 확인했다고 들었다. 만약 내가 전 근무지에서 대충대충 근무했거나 인간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취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군대에서는 수직적 관계라 내가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지만 사회에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내가 이곳 학교에 온 지 몇 달이 안 되었을 때다. 지하 물탱크실을 자세히 둘러보다 문제를 하나 발견했다.

외부에서 상수도가 지하 물탱크로 들어오면 모터로 옥상 물탱크로 물을 올리는 시스템인데 모터 한 대로만 운용이 되고 있었다. 옆에 예비모터가 있는데 한 번도 돌린 흔적이 없이 녹이 슬어 고착되어 있었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 잠가진 밸브를 열고 예비모터 스위치를 올려 보았다. 모터는 몇 번의 요동을 친 후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옥상 물탱크로 가서 실제로 물이 나오는지 확인하러 옥상 물탱크로 올라가 보았다.

물은 잘 나오는 데 문제가 생겼다. 시커먼 녹물이 나오는 게 아닌가. 급히 지하 기계실로 달려가 모터를 멈췄지만 이미 상당한 녹물이 탱크로 흘러간 뒤였다. 아니나 다를까 급식 식당에서 연락이 왔다. 점심 준비를 하던 식당에 녹물이 나온다고 했다. 다행히 행정실에서 대형 생수통을 발 빠르게 마련해 학생들의 급식은 차질없이 준비되었고, 이후 청소업체에 연락해 물탱크를 청소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고 난 후 나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기에 일단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행정실로 가서 실장님께 너무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의외로 실장님은 담담하게 웃으며 괜찮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면목 없고 아찔한 순간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평소에 맡은 바 업무를 정말 성실히 최선을 다했기에 큰 질책 없이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그날 일을 생각하며 오늘도 최선을 다해 일을 찾아서 그리고 즐겁고 긍정적으로 나의 일을 하고 있다.

만물이 태동하는 봄이 왔다. 길가에 하나둘 꽃이 피고 있는데, 전역을 앞둔 제대군인들의 앞날에도 봄꽃처럼 화려한 제2의 인생이 펼쳐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