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이 최근 능주초등학교에 설치된 ‘정율성 흉상’을 철거하면서 역사적 관점 차이를 둘러싼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국가보훈부가 정율성 사업 철수를 권고한 지 8개월 만에 이행 조치한 것으로, 광주시 기조와 상반된 행보를 이어간 만큼 지역사회의 분열을 또다시 가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율성을 놓고 항일운동가, 공산당 여부를 놓고 이념논쟁이 다시 불 붙을 것으로 보여 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8일 광주시와 화순군 등에 따르면 화순군은 올해 1월 ‘능주초 정율성 기념시설 철거’ 심의를 거쳐 지난달 30일 정율성 흉상과 기념교실을 철거했다. 광주 출신의 작곡가인 정율성은 일제강점기 이후 북한 북조선인민위원회에 가입했고, 6·25 전쟁 중 중국으로 귀화해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능주초 정율성 벽화/이수민 기자

정율성이 1923년 2학년까지 능주초를 다닌 인연으로 화순군은 지난 2008년 능주초 100주년을 기념해 정율성 흉상과 기념교실, 벽화를 설치했다. 지난해 정율성에 대한 이념 논쟁이 불거지자 능주초는 화순군에 시설물 철거를 요청했다.

빨갱이, 공산당 등 비방은 물론 심한 욕설이 담긴 민원인 전화가 빗발치면서 학교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교육활동 침해가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에 화순군은 능주초 학부모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율성 흉상 등을 철거했고, 조만간 능주초에 설치된 벽화도 철거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국가보훈부도 지난해 10월 광주시와 화순군에 정율성 관련 사업을 중단하라는 시정 권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능주면 정율성 고향집/이수민 기자

반면 광주 지자체의 경우 정율성 관련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거나 축소 변경하긴 했으나 독립유공 공로를 인정하는 모양새다.

광주시는 동구 불로동에 정율성 생가와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올해까지 마무리 짓기로 했으며, 남구는 양림동에서 추진하던 ‘정율성 전시관’ 조성 사업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양림 문학관’으로 변경했다. 사업 내용도 양림동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변경했고, 지난해 10월 두차례 보수단체 인사에 의해 훼손된 흉상은 다시 설치하지 않고 임시 보관 중이다. 광주시는 올해 본예산 심사 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삭감된 ‘정율성 음악 축제’는 국제 음악회로 이름을 변경하고 기존보다 음악회 규모를 축소해 개최하기로 했다.

화순군의 경우 능주초에 설치한 기념물을 모두 철거했으나, 화순 능주면에 위치한 ‘정율성 고향집’은 내부 수리를 진행해 보전하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 속 화순군이 정율성 흉상을 철거함에 따라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김일성 나팔수를 했던 인물’, ‘철 지난 이념공세’ 라는 논쟁이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광주진보연대 류봉식 대표는 “한·중우호관계가 엮여있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도 이념 논쟁에 화순군이 철거를 섣불리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율성은 뛰어난 음악성과 독립운동의 역사 등 좋은 관점으로 볼수도 있다. 이념 논쟁은 이미 철이 지났다”고 말했다.

참여자치21 변원섭 정책위원장은 “정부나 단체장이 바뀌면서 과거 행적 지우기로 진행했던 사업을 철수하거나 없앤다면 예산낭비나 다름없다”며 “보수단체의 프레임으로 각 지자체의 사업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반면, 전국학생수호연합 광주지부 관계자는 “정율성은 중공군·북괴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응원가를 작곡했다”며 “사업을 그대로 추진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