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서 5월로 가는 길목, 새잎들이 피어나 가장 고운 색으로 윤기를 발하는 계절. 휴일 하루를 비워 정갈한 마음으로 햇차를 만든다. 아침햇살 속에 이슬 머금은 싱싱한 햇순을 조심조심 따는 일로 차 만드는 일은 시작된다. 집 옆 대숲에서 자라는 야생 찻잎을 이용하기에 많은 양은 아니지만, 어쩌다 묵은 잎이 들어가면 쌀에 뉘가 섞인 듯 튕겨 나오기 때문에 참새 혀처럼 작고 부드러운 새순을 상처 없이 곱게 딴다.

넓고 두꺼운 솥에 덖고 비비는 작업을 반복해서 덖음차를 만든다. 구증구포라고 해서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빈다고 했지만, 차가 제빛을 내며 마르기까지는 온 감각으로 어림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차는 단순히 마시는 기호식품만이 아니라 다도(茶道)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역사성과 정신적 경지까지를 함유한 식품이다. 삼국사기를 토대로 차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에 갔던 사신 대렴(大斂)이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다도를 중흥시킨 삼절(三絶)로는 다산, 초의선사와 함께 추사 김정희가 꼽히는데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음다흥음주망(飮茶興飮酒亡)이라고 했다.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는 뜻이다. 인간사의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신전’과 ‘동다송’을 남겨 ‘다성’으로 불리는 초의선사와 더불어 이목(李穆)은 우리나라의 다부(茶父)라고 불린다. 육덕(六德)과 오공(五功)은 물론, 차 마시기의 일곱 가지 효능을 노래한 다부(茶賦)를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잔을 마시니 마른 창자가 깨끗이 씻기고, 두 잔을 마시니 마음과 혼이 상쾌하고, 석 잔을 마시니 호연지기가 생겨나고, 넉 잔을 마시니 가슴에 웅호한 기운이 생기며 울분이 없어지고, 다섯 잔을 마시니 색마가 도망가고 탐욕이 사라지며, 여섯 잔을 마시니 신기함이 하늘나라에 오르는 듯하고, 일곱 잔을 마시다가 반이 채 안 되는데 맑은 바람이 울울히 옷깃에 일어난다고 했다.

햇차의 향을 맡으며 다부를 읊다 보니 시가 있고 묵향이 피어나는 뜰 앞 정자에서 맑은 정신으로 벗과 차를 나누는 선인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손끝에 따끈하게 전해오는 찻잔의 온기와, 정갈한 백자에 담긴 차의 빛과 향을 음미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느끼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 그런 속에서 나누는 대화에 어찌 망언이 있을 수 있으며 사악한 생각이 자리할 수 있겠는가. 다산의 말과 같이 술은 자칫하면 정신과 건강을 해치는 독물이 될 수 있지만, 차는 정신은 물론 온몸을 정화하는 신물(神物)인 듯 느껴진다.

정성을 다해 만든 차 한 잔을 고이 놓고 백모란 활짝 핀 뜰에 앉았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잔잔한 호수의 표면을 닮아 가는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차를 만드는 공력보다 더한 정진의 시간을 가져본다.